http://www.theology.or.kr/mal/27s/27_special%20edition2_jeong.htm

오리겐의 영성

정용석


1.1. 들어가는 말[1])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오리겐(약 185-254년)은 사도 바울과 어거스틴 사이에 등장했던 초대교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일컬어진다. 그는 초대 기독교 신학과 영성의 선구자요, 지도자로서 후대의 수도원운동에 교리적 초석을 놓은 사람이다. 제롬에 의하면 오리겐은 약 2천 개의 저술을 남겼다고 하는데 그중 약 8백 개의 저술 제목이 알려져 있다. 오리겐은 성서의 거의 모든 책에 대한 주석과 강해를 썼으며 『제일원리』, 『켈수스 반박』, 『헬라클리투스와의 대화』, 『순교』, 『기도』, 『헥사플라』 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들 중 희랍어본은 대부분 유실되었고 제롬과 루피누스의 라틴어 역본이 주로 남아 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교회사학을 주도하던 독일 루터교 계통의 학자들은 오리겐을 기독교 신학자라기보다는 중기 플라톤주의나 영지주의와 관련된 희랍철학자로 보면서 그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1]) 그러나 프랑스의 카톨릭 계통 학자들이 오리겐 연구를 주도하게 되면서[1]) 그를 위대한 성서신학자요, 영성생활의 지도자로 조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오리겐은 이단자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 ‘교회의 사람’( κκλησιαστικ )이라는 호칭을 되찾게 되었다.

현대 오리겐 학자들은 그의 영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기독교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오리겐의 영성은 당시 그레코 -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기독교의 특성을 고려에 넣지 않고는 바로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복음의 내용을 희랍철학의 체계와 용어를 빌려서 표현했지만 근본적으로 성서와 교회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리겐의 저서에 나타난 사랑과 섭리의 하나님 개념, 창조론, 화육 사건과 역사적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공동체적 성격에 대한 가르침은 희랍철학의 관념론적 신 개념, 신과 인간의 무관한 상태, 유출설, 회귀적 역사관, 지적 엘리트 중심의 개인주의 등의 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오리겐의 영성의 주요 내용은 순교, 수덕적 삶, 하나님과의 합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영성은 초대교회 영성의 특징이었던 순교신앙을 견지하면서 수덕적, 관조적 삶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오리겐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님과의 합일을 향한 영혼의 순례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타락으로 인하여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2. 오리겐의 영성

1) 인간의 본질과 운명

오리겐의 인간론은 그의 영성의 출발점과 근원이 된다. 그는 우의적 해석의 대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영향을 받아 ‘이중 창조설’을 주장한다. 오리겐에 의하면 창세기 1장 27절은 영적 창조로서 지적 영들(ν ε ), 또는 이성적 존재들(λογ?κοι)의 창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지적 영들은 똑같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순수하고 지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신적 열기를 잃고 식어져 영혼들(ψ χαι)이 되었다(Princ. 2.8.3).[1]) 하나님은 이들을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훈련장으로 육체를 포함한 물질계를 창조하셨는데 이것이 창세기 2장 7절의 내용이다.

오리겐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근거해서 인간은 영(πνε μα)와 혼(ψυχ?)과 육(σ μα)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Princ. 2.8.1-5; Hom. Lev. 5.1,5).[1]) 영은 하나님의 은사로 인간에게 주어진 신적 요소이다. 영은 인간 인격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 영은 성령과 교통하는 관문으로서 덕행, 기도, 하나님 지식을 통해 혼을 훈련시킨다. 인간이 죄짓는 삶을 살 때 영은 축소되고 무기력하게 되며, 거룩한 삶을 살 때 영은 활기를 찾게 된다. 육은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 의해서 혼의 훈련을 위한 도구로 창조되었다. 오리겐은 육체가 죄의 원인이 아니라 죄가 육체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혼은 영과 육의 중간에 위치하며 영을 따를 때는 영적으로, 육을 따를 때는 육적으로 변한다. 오리겐은 혼을 상위요소와 하위요소로 구분하는데 전자를 지성(νο ), 이성(λ γο ), 마음(καρδ?α), 또는 지배기능( γεμονικ ν)이라고 부른다. 상위요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부분으로서 덕행과 관조적 삶의 영역이다. 후자는 육욕(σ?ρξ)이라고 불리며 욕망과 본능의 자리이다. 이 하위요소는 혼을 유혹하여 영으로부터 멀어져 육적이 되게 한다. 혼은 각 개인의 인격의 자리로서 자유의지가 있는 곳이다(Princ. 3.4.2-4). 혼은 내적 인간이라고도 불리며, 오리겐은 영혼을 실재적 인간으로 여긴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은 것이 아니라 악의 형상에 가리워져서 흐려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소홀히 함으로써 흐려질 수는 있어도 결코 파괴되지는 않는다. 오리겐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가 그린 그림에 비유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형상을 그린 화가이다. 그는 위대한 화가이기 때문에 그의 형상은 부주의로 인하여 흐려질 수는 있지만 악의에 의해서 파손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비록 당신 자신이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위에 세상의 형상을 그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형상은 항상 남아 있기 때문이다(Hom. Gen. 13.4).

인간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자유의지의 능력을 부여받았으며 각자는 자발적 선택에 의해서 개선되거나 퇴보한다(Princ. 2.9.6). 오리겐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지만 결코 인간이 자신의 완성 또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없이는 이룰 수 없다고 한다(Princ. 3.2.2,5; Cels. 7.42-44). 다른 희랍교부들과 마찬가지로 오리겐이 강조한 것은 자유의지의 능력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은사이며 모든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자유의지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영혼의 순례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하지만 오리겐이 하나님의 형상과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무시하고 영혼의 능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 없이는 인간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이 자신의 지혜를 찬양하거나, 강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찬양하게 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의 것은 아무 것도 찬양 받을 만한 것이 없으며 하나님의 은사일 뿐이다. 지혜나 능력이나 그 밖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Com. Mt. 10.19).

2)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순례

오리겐의 가르침에 사변적이고 지적인 진술들이 많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통하여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으로 나아가는 것이다(고후 3:18). 오리겐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님과의 연합을 향한 순례, 본래의 상태를 향한 영혼의 점진적 회귀, 영적 변화와 상승의 과정, 하나님 형상의 회복 과정 등으로 표현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순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약속된 땅으로 향하는 여정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신이 아닌 우상들에 대한 경애심과 악령들에 대한 숭배를 버리고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서 신앙과 덕의 단계들을 하나씩 올라가자(Hom. Num. 27.3).

오리겐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단계를 행동(πρ ξι )과 관조(θεωρ?α) 또는 단순한 신앙과 완전한 신앙 등 두 단계로 나누기도 하지만, 대체로 세 단계를 말한다.[1])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우유를 먹는 초보적 단계, 야채를 먹는 진보적 단계, 그리고 단단한 음식을 먹는 성숙한 단계(고전 3:2 ; 롬 14:2)로 구분하기도 하며(Hom. Gen. 14.4; Hom. Lev. 1.4; Hom. Jos. 9.9; 22.2), 성령, 성자, 성부와 교통하는 세 단계로 나누기도 한다(Princ. 1.3.8). 또한 잠언, 전도서, 아가서가 영혼의 순화(purification), 계몽(illumination), 합일(unification)의 단계를 상징한다고 말하기도 한다(Com. Cant. prol.). 그리스도의 하강이 42세대에 걸쳐 이루어졌으므로(마 1:17) 영혼의 순례과정은 말씀이 화육하신 경로를 되밟는 42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Hom. Num. 27). 말씀의 화육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하기 위한 방도이다.

하나님 형상의 개념은 오리겐의 영성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특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1장 26-27절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골로새서 1장 15절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삶은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모상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ε κ ν)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고 모상( μο?ωσι )에 대해서 침묵하셨다는 사실은 다름아니라 인간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지만 완전한 하나님의 모상은 마지막 완성의 때를 위하여 남겨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의 목적은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실한 노력에 의해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처음에 영광스러운 형상을 통해서 완성을 이룰 가능성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이런 일들을 성취함으로써 완전한 모상을 획득해야 한다(Princ. 3.6.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형상으로부터 모상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이다. 모상이란 바로 창조시에 인간에게 주어졌던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것이다. 오리겐은 “종말은 시작과 같다”(The end is like the beginning)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Princ. 1.6.2). 그러므로 영혼의 순례는 그의 길을 돌이켜서 원래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며(Princ. 1.3.8),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Com. Jn. 19.22.144).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라야 한다.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며 인간은 ‘형상의 형상들’(ε κ να τ ε κ νο )이다(Hom. Lc. 8.2). 그리스도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셔서 인도하신다(Hom. Jos. 7.2).

그리스도는 실제로 그를 본받는 사람들의 영혼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시며, 이 말은 덕을 쌓아가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Hom. Jer. 14.10; Princ. 1.3.8).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면서 그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신다(Hom. Gen. 1.13).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라고 불리며, 심지어는 ‘그리스도들’(χριστο?)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마치 각각의 성자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 분을 따라 형성되어 가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들, 즉 많은 그리스도들이 있다(Com. Jn. 6.6.42).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주심으로써 우리의 영적 순례를 가능하게 하신다. 처음에는 도덕적 능력을 주셔서 악한 세력과 싸우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지적 통찰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역사와 신비로운 사실을 인지하고 깨닫게 하신다.

3) 순 교

초대교회에서 순교는 가장 완전하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 완전한 제자가 되는 길, 최상의 구원의 길,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을 이루는 길로 믿어졌다. 물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신비스럽게 참여하는 출발점이라면 순교, 즉 피세례는 그 완성을 의미한다. 순교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도 사할 수 있다(Mart. 50). 순교는 자신 전체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완전한 제사이다

만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내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나는 모든 제물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친 것이다. 또한 만일 내가 몸을 바쳐 사랑을 얻고 순교의 영광을 얻는다면 나는 자신을 하나님의 제단에 온전히 바친 것이다(Hom. Lev. 9.9).

그리스도는 순교자와 함께 정죄당하고, 재판받고, 고통을 겪으신다(Hom. Jer. 14.7). 순교자는 그리스도를 따라 천상의 세계에 이르게 되며(Hom. Jud. 7.2; Mart. 13-15), 하나님 지식과 모든 신비로운 진리를 얻게된다(Mart. 13). 또한 순교는 현세에서 미리 부활을 맛보는 것이다(Cels. 1.2,4).

오리겐은 순교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으면서 순교신앙이 수덕신앙으로 전환되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에 의하면 순교의 필수적 요소는 육체적 죽음의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그리스도를 위한 삶에로 방향 짓는 것이다. 오리겐은 이것을 양심의 순교, 또는 매일의 순교라고 말한다. 그는 짧은 시간에 고통 당하고 죽는 것보다 일생을 통해 박해와 고난을 받음으로써 장차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거나 한 시간 동안 고문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것은 하루 종일, 다시 말해서 전 생애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전 생애를 박해와 위험 속에서 지낸다고 해도 현재의 고통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현세의 삶은 짧으며 고통의 순간은 곧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영광은 영원한 것이다(Com. Rom. 7.1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순교의 기회가 없을지라도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덕을 쌓는 수덕적 삶을 통해 장차 맛볼 영광에 대비해야 한다.

4) 수덕적 삶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모시는 사제들로서 하나님께 찬양, 기도, 사랑, 순결, 거룩함을 드려야 한다(Hom. Lev. 12.4 ; 9.1). 그리스도인에게는 바른 생각뿐만 아니라 바른 행함도 중요하다. 생각은 영혼의 아들이며 행동은 영혼의 딸이다(Hom. Jer. 5.7). 성소는 장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행동과 삶에서 찾아야 한다(Hom. Lev. 12.4).

수덕적 삶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현재 죄의 상태에 빠져 있음을 인식함으로써 시작된다(Com. Cant. 2.5). 이러한 자기인식은 회개로 이어지는데 회개란 죄된 생활에서 돌아서서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접착시키는 것이다.

회개는… 우리의 죄된 행동을 고백하게 하며, 밤낮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도와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열매맺는 가지가 될 수 있으며 그 뿌리에 접착하게 된다(Hom. Ez. 5.5).

회개를 한 신자는 세례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된다. 오리겐은 다른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세례를 중생의 목욕, 영적 할례, 믿음의 인침, 하나님 은사의 시작이요 근원이라고 말한다. 세례의 효력은 영혼을 순화시키고 죄를 용서하며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고 성령을 받는 것,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세례를 통해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태어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은 후 영적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당신은 물세례에 이르렀다. 이것은 영적 투쟁의 시작이다. 여기서 당신은 악마와의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Hom. Jud. 9.2). 그러나 그리스도가 지도자가 되어 새 길을 인도하신다(Hom. Jud. 9.2 ; Hom. Jos. 4.1). 각 사람에게는 그를 유혹하고 시험하는 악령과 바른 길을 인도하고 수호하는 천사가 있다(Princ. 3.2.4). 시련과 유혹은 자신을 정화시키고 한 단계 높이 전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시험의 쓴맛을 보지 않고는 종려나무에 이를 수 없으며 가혹한 시련을 극복하지 않고는 샘물의 단 맛을 즐길 수 없다(Hom. Num. 27.11). 하나님께서는 제련공이 불 속에서 금을 제련하듯이 우리를 시험 속에서 정화시키신다(Hom. Num. 27.12).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들(militia Christi)로서(Princ. 3.2.5; Hom. Jos. 1.1; 12.1) 금욕과 순결과 기도와 덕행을 무기로 삼아 악한 영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대장이신 그리스도를 따른다.

기도는 영혼을 정화시키고 악령들과 싸우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영혼은 기도를 통해서 더욱 영적이 되며 세속적, 육체적 관심에서 벗어나 하늘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신자의 전 생애는 하나의 큰 기도이며 우리가 흔히 기도라고 하는 것은 이 삶을 통한 기도의 한 부분이다(Orat. 12.2). 오리겐은 기도의 유형을 제시하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 대해 감사드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위대한 하늘의 은사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가르친다(Orat. 33.1).

육체의 정욕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영혼의 순례를 완성시킬 수 없다. “만일 남아있는 덕과 사제적 직무가 결여된다면 육체적 금욕만으로는 주님의 제단에 이를 수 없다”(Hom. Lev. 1.5). 그리스도인은 영혼을 정화시키면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것은 덕을 쌓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지혜, 평화, 정의, 성화 등 모든 덕의 근원이 되신다(Com. Rom. 5.10 ; Cels. 1.57). 오리겐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지상생애와 관련시켜서 겸허의 덕을 강조한다. 겸허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우리는 항상 교만 때문에 죄에 빠질 염려가 있다. 교만은 모든 죄와 악의 근원이다(Hom. Ez. 9.2; 10.1). 그러므로 완성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장 낮은 자로 생각해야 한다(Hom. Jer. 8.4). 오리겐은 또한 순종의 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조화로운 세상의 질서가 무너졌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회복되었고 우리는 구원을 얻게되었다(Princ. 3.5.6-7).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본받아야 한다. 오리겐은 또한 청빈의 덕을 강조한다. 청빈은 재물을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 분께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리겐이 덕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 강조한 것은 이웃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은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구제헌금을 드리는 것은 죄의 용서를 받는 방법 중 세례와 순교 다음으로 효력이 있는 것이다(Hom. Lev. 2.4). 영혼의 정화는 이웃사랑을 통해서 나타나며, 우리는 자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게 된다(Hom. Lev. 4.3).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사랑 안에서 완전하라는 명령과 같은 것이다(Com. Rom. 7.7). 덕에 관한 오리겐의 가르침은 후에 수도원주의의 핵심적 원리가 되었다. 정욕을 억제하고 덕을 쌓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지며, 영적 지혜를 얻게 되고,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5) 관조적 삶

그리스도인의 삶은 수덕적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로고스와 그의 신비를 관조하는 삶으로 연결된다. 오리겐은 행동(πρ ξι )과 관조(θεωρ?α)를 구분하면서 마르다는 행동을, 마리아는 관조를 나타낸다고 우의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Fr. Lc. 72). 오리겐이 관조를 행동보다 우위에 두기는 했지만, 그 둘은 영혼의 교육을 위해서 함께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행동과 관조는 상대방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Fr. Lc. 72).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적으로 영적이거나 관조적인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관조에 이르게 되는 것은 행동을 통해서이다. 그리스도의 삶에서도 그 둘은 함께 나타나며(Com. Jn. 6.19.103), 그리스도가 “와서 보라”(요 1:39)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우리를 행동과 관조에로 동시에 초대하는 것이다(Com. Jn. 2.36.219). 이 두 종류의 삶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우리를 완성에로 인도한다.

그리스도인은 관조를 통해 하나님 지식을 얻게 되며 천상의 신비를 알게 된다(Princ. 2.11.6-7; Com. Cant. prol. 3). 이 단계에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육적 감각은 닫히고 영적인 감각이 열리게 된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영적 감각을 통해 본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사랑과 연합을 의미한다. 오리겐은 창세기 4장 1절과 관련해서 아담이 그의 아내 이브를 알았다는 것은 곧 사랑 안에서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Com. Jn. 19.4). 지식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지식이 커질수록 사랑은 더욱 뜨거워진다(Princ. 1.3.8). 그러므로 지식은 지적(intellectual)이며 동시에 애정적(affective)인 것이다.[1])

이제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생각하고 사모하게 된다. 모든 감각들은 영적이 되고 모든 생각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전에 그림자와 같고 수수께끼 같았던 것들, 즉 천상의 신비가 밝히 드러나며 깨달아지게 된다. 하나님을 점점 더 알게 된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점점 더 알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지식은 항상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신비이다. 영혼은 드디어 로고스와 신비적 결합을 이루게 된다. 오리겐은 이 결합을 영적 결혼(πνευματικ γ?μο )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말한다:

나는 가끔 신랑[로고스]이 내게로 가까이 와서 나와 함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사라지고 아무리 애써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그가 다시 오기를 갈망하고 때때로 그는 다시 나타난다(Hom. Cant. 1.7).

오리겐은 하나님을 향한 순례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τ?λειο ), 신화(θ?ωσι ), 또는 회복( ποκατ?στασι )으로 표현한다. 이 단계는 하나님을 완전히 알고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이루는 단계이다. 영혼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참여하게 된다: “우리는 성자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들로 받아들여지며, 하나님 안에 있는 지혜에 참여함으로써 현명해지고, 마찬가지로 성령에 참여함으로써 거룩하게 되고 영적이 된다”(Princ. 4.4.5). 이 단계에서 우리의 신화(θεοπο?ησι ; θ?ωσι )가 이루어지며 성자가 θε 이고 성부가 θε 인 것처럼 우리는 θεο?가 될 것이다(Com. Jn. 2.2.13-14).

우리의 신화는 그리스도에 근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은 그 분과 교제하면서 신화의 길로 이끌려진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게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신성과의 교제에 의해서 인성이 신성화되는 것은 예수님에게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가르치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삶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예수님과의 교제에로 인도한다(Cels. 3.28).

신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성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Com. Jn. 2.2.17). 그것은 또한 하나님과 완전한 교통을 하고 그 분을 완전하게 닮았던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영혼은 원래의 상태인 이성적 존재(λογ?κοι)로 회귀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지막은 시작과 같을 것이며 하나님은 만물에 충만하실 것이다(고전 15:28; 엡 1:23) (Princ. 2.3.7; 3.5.6; 3.6.1-3).

3. 나가는 말

오리겐은 초대교회에서 영성의 대가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리겐의 가르침은 후대의 교리논쟁에 비추어 해석할 것이 아니라 영성 생활에 대한 가르침으로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그의 가장 사변적인 저서인 『제일원리』도 신앙의 항목에 관한 체계적인 교리적 진술이나 조직신학적 저술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과 회복, 즉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순례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오리겐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수많은 주석과 강해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오리겐은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순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위치와 역할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앙에 위치시킨다. 그리스도는 신자의 모델과 인도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신자 속에 임재하면서 힘을 주고 신앙을 성장시킨다. 오리겐이 가르친 삶의 단계, 즉 정화, 계몽, 합일의 단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겸허, 순종, 청빈의 덕은 후대 수도원 운동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그가 가르친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은 사변적, 지적 삶이라기보다는 사랑과 섬김의 삶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항상 예수그리스도가 있었으며 그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 것을 끊임없이 권했고 자신도 그렇게 살았다. 오리겐은 학자요, 사변가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지도한 목자요, 교사요, 영적 지도자였다.

◇ 오리겐의 저서

Com. Cant. Commentary on the Song of Songs

Com. Jn. Commentary on John

Com. Mt. Commentary on Matthew

Com. Mt. Ser. Commentary Series on Matthew

Com. Rom. Commentary on Romans

Cels. Against Celsus

Fr. 1 Cor. Fragments on 1 Corinthians

Fr. Jn. Fragments on John

Fr. Lc. Fragments on Luke

Fr. Mt. Fragments on Matthew

Fr. Ps. Fragments on Psalms H

erac. Dialogue with Heraclides

Hom. Cant. Homilies on the Song of Songs

Hom. Ex. Homilies on Exodus

Hom. Ez. Homilies on Ezekiel

Hom. Gen. Homilies on Genesis

Hom. Jer. Homilies on Jeremiah

Hom. Jos. Homilies on Joshua

Hom. Jud. Homilies on Judges

Hom. Lc. Homilies on Luke

Hom. Lev. Homilies on Leviticus

Hom. Num. Homilies on Numbers

Hom. Sam. Homilies on Samuel

Mart. Exhortation to Martyrdom

Orat. On Prayer

Pasc. On the Passover

Princ. On First Princip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