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부써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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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Calvin)의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부써(Bucer)의 영향

저자: Willem van 't Spijker
- 화란 아뻘도우른 신학교 (De Theologische Universiteit te Apeldoorn)의 교회사 교수
1970년에 「부써의 직분론」 (De ambten bij Martin Bucer)이라는 제목으로, 자유대학
(Vrije Universiteit)의 나우타 (D. Nauta) 교수에게서 박사학위 받음.

역자: 황 대 우

* 이 논문은 1984년에 남아공화국의 포체프스드롬(Potchefstroom)에서 개최되었던 칼빈학회에 기고된 것으로서, 영어로는 「존 칼빈의 강요: 그의 대작」 John Calvin's Institutes his opus magnum (1986년도에 포체프스드롬 대학에서 출판됨)이라는 책의 106-132페이지에 “The Influence of Bucer on Calvin as Becomes evident from the Institutes”라는 제목으로 실렸고, 화란어로는 “De invloed van Bucer op Calvijn blijkens de Institutie”라는 제목으로 「개혁신학」 (Theologia Reformata)이라는 계간지 (1985년 1호) 15-34페이지와, W. van 't Spijker 교수의 소논문 모음집인 「성령과 말씀과 교회」 (Geest, Woord en Kerk, Kampen의 Kok 출판사에의해 1991년도에 출판됨)라는 책의 94-113페이지에 실렸습니다.

서론 참고 자료: J. Courvoisier, “Bucer et l'oevre de Calvin,” in: Rev. de Théol. et de Phil., T. XXI, 1933, N.S., p. 66-77; 동일저자, “Bucer et Calvin,” in: Calvin à Strasbourg (Quatre Etudes, Strasbourg 1938); H. Eells, “Martin Bucer and the Conversion of John Calvin,” in: The Prinston Theological Review, 22 (1924), p. 402-419; A. Ganoczy, Le jeune Calvin, Genèse et évolution de sa vocation réformatrice, Wiesbaden 1966, p. 166-178; A. Lang, Der Evangelienkommentar Martin Buzers, Leipzig 1900, p. 5-11; 370-373; 동일저자, Johnnes Calvin, Bielefeld/Leipzig 1913, p. 108ff; 동일저자, “Die Quellen der Institutio von 1536,” in: Ev. Theol. 3 (1936), p. 100-112; W, Neuser, Handbuch der Dogmen- und Theologiegeschichte, II, C. Andresen에 의해 편집됨, Göttingen 1980, p. 209-224; J. Panier, Calvin à Strasbourg, Strasbourg 1925; W. Pauck, The Heritage of the Reformation, Oxford 1961, p. 85-99; O. Ritschl, Die reformierte Theologie des 16. und des 17. Jhdts., Göttingen 1926, p. 122-156; R. Seeberg,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IV, 2, Erlangen/Leipzig 1920, p. 551-557; W. van 't Spijker, De ambten bij Martin Bucer, Kampen 1970, p. 317-321; 동일저자, “Prädestination bei Bucer und Calvin,” In: Calvinus Theologus, W.H. Neuser에 의해 편집됨, Neukirchen 1976, p. 85-111; H.E. Weber, Reformation Orthodoxie und Rationalismus I, 1, Gütersloh 1937, p. 203-217; F. Wendel, Calvin Ursprung und Entwicklung seiner Theologie, Neukirchen 1968, p. 116-122.


부써와 칼빈 사이는 상호 신뢰의 관계였는데, 이것은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 긴장 그리고 불일치가 이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위태롭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 A. Wiedeburg, “Die Freundschaft zwischen Bucer und Calvin nach ihren Briefen,” Hist. Jahrbuch 83 (1964), p. 69-83.
칼빈은 두 가지 근거 (botem)를 가진 양식들을 만들 수 있었던 부써의 평화적인 자세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찬론 논쟁에서의 부써의 애매하면서도 웅변적인 주장들에 대해 칼빈은 비판적이다. 그러나, 칼빈은 그의 온 마음을 다해 부써의 그러한 노력을 지지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그 종교개혁자의 그와 같은 연합에 대한 노력을 지지했고, 부써가 죽은 후에도 분열된 개신교를 연합하려한 부써의 열심을 계속해 나갔는데, 이런 점에서 칼빈은, 불링거 (Bullinger) 편으로부터, 부써가 이전에 받았던 것과 동일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불링거는 이와 관련하여 칼빈을 제 2의 부써로 보았다. A. Wiedeburg, ‘Die Freundschaft...,' p. 78.
칼빈과 부써는 단지 교회의 연합과 관련해서만 동일한 정신을 소유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특히 서로에게서,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교회와 신학의 가장 중요한 것을 형성하는 것이 무었인가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진전시키는 일이었다.
상호간의 정당한 평가와 인정에 대해 논해보자. 우리는 이러한 발자취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환서신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확실히, 그들이 가졌던 스트라스부르그에서의 개인적인 만남 (1538-1541)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부써는 칼빈을 스트라스부르그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CO, XI, p. 54.
칼빈은 만일 부써가 자신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제네바 (Geneva)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CO, XI, p. 100.
부써는 칼빈이 책 쓰는 일에 전념할 수 있기 위해 모든 다른 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반면에, 칼빈은 성경 주석에 열중하는 일에 있어서 부써 이상의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판단했다. 칼빈이 부써의 로마서 주석에 대해 내린 평가는 잘 알려진 것이다. CO, X, p. 404.
칼빈은 이 주석을 다소, 종교개혁이 가져온 것의 결론으로 보았다. 그는 이 주석에서 부써의 심오한 학식과 그의 폭넓은 학문, 그의 예리한 통찰력, 자료에 대한 그의 지식을 발견했는데, 이런 점에 있어서 부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겨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와 동등하다고 자리매김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 시대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그 이상의 성실함을 가지고 성경 해석에 헌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자신의 시편 주석의 서문에서도 칼빈은 성경 주석에 관한 부써의 박식함과 철저함, 그리고 신실성을 칭찬한다. CO, XXXI, p. 13.
불링거에게 보낸 한 편지 (1540년 3월 12일자)에서 그는 부써를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불링거의 의구심에 대해, 부써를 잘못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부써를 변호했다. 그 이유는: “비록 그가 특별히 분명하고도 날카로운 판단을 받았다할찌라도, 그보다 더 열심히 말씀의 단순성을 지킨 사람은 없으며, 유혹적인 궤변에 대해 그 보다 덜 수용적인 사람은 없다. 그는 그러한 궤변을 증오한다!” CO, XI, p. 29.
여러 경우에 있어서 칼빈은 그의 연상의 친구를 위해 그러한 변호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들의 관점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천적인 행동의 목적과 관련시켜 생각할 때에도, 이러한 자세는 단지 그 두 사람 사이의 크고도 넓은 일치에 의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칼빈이 부써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W. van 't Spijker, De ambten, p. 319.
그의 스트라스부르그 시절에 교회를 조직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졌는데, 그것은 부써가 목표 삼았던 것이었다. 부써가 영국에 있을 때, 그는 그의 에베소서 강의에서 칼빈의 주석 작품을 즐겨 사용했다. T.F. Torrance, Kingdom and Church; A study in the theology of the reformation, Edinburgh/London, p. 73, n.l.
상호간의 신뢰는 상호간의 영향의 기초였다. 그러나, 나이 차를 고려한다면, 칼빈이 부써에게 끼친 영향 보다 받은 영향이 훨씬 많다고 설명할 수 있다. 칼빈에 대한 부써의 분명한 영향을 논하는 것은 많은 연구가들에게 있어서 확고한 것들에 속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써가 칼빈에게 끼친 영향을 지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만 교회 직분과 교회 치리, 예배문과 교회 생활의 정비라는 개념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J. Courvoisier, La Notion d'église chez Bucer dans son développement historique, Paris 1933; 동일저자, “Le sens de la discipline ecclésianstique dans la Genève de Calvin,” in: Hommage à Karl Barth, Neuchatel/Paris 1946, p. 19-30; J. Plomp, De kerkelijke tucht bij Calvijn, Kampen 1969; G.J. van de Poll, Martin Bucer's liturgical ideas, Assen 1954; G. Anrich, Strassburg und die calvinische Kirchenverfassung, Tübingen 1928.
이러한 영향은 부써가 칼빈에게 그 길을 보여준 선택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W. van 't Spijker, “Prädestination...”.
여러 가지 면에서 칼빈의 예정에 대한 개념들은 부써의 예정에 의해 준비되어진 것이다. 부써의 로마서 주석에 나타난 사상과 칼빈의 두번째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사상의 세밀한 비교는 이러한 영향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선택론을 “교회의 핵심” (cor ecclesiae)이라 부른다면, 이것은 칼빈이 그의 교회론에 있어서 부써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교회 생활의 실천적 형식제공과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특히 교회의 지속적인 비밀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칼빈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부써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이 세상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나라 (Regnum Christi)와 관련된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이 나라 (Regnum)는 사색적인 것이 아니다. 칼빈과 마찬가지로 부써 역시 이 나라에 구체적인 형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칼빈주의는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최초로 한 형태가 되었는데, 이것은 오늘날까지 역사에서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칼빈이 1541년에 스트라스부르그를 떠날 때, 그는 이전 보다 훨씬 자기자신답게 되었다. 빠니에 (Panier)가 말한 것처럼, 우리 역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보다 나은 칼빈주의자가 되었다 (il était plus calviniste).” Pannier, Calvin à Strasbourg, p. 55.


1536년판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부써의 영향

아우구스트 랑 (August Lang)은 부써의 복음서 주석에 관한 자신의 심원한 연구에서 칼빈의 1536년판 「기독교 강요」와 부써의 이 복음서 주석 사이의 유사성 (parallellen)을 지적했다. A. Lang, Der Evangelienkommentar, 이 책의 색인을 보라.
그는 1536년판 「기독교 강요」의 원천에 관한 그의 한 연구논문에서 이 문제를 상세하게 취급했다. A. Lang, ‘Die Quellen,’ p. 108ff.
바르트 (Barth)와 니젤 (Niesel)은 그들의 칼빈작품선집 (Calvijneditie; 이것은 그들이 칼빈의 작품을 선별하여 편집한 5권으로 된 책, Joannis Calvini Opera Selecta (OS로 약칭됨)를 의미한다: 역자주)의 여러 곳에서 부써의 이 작품을 언급하는데 특히, OS, IV, p. 4, 15, 58, 59, 60, 76, 78, 228, 339, 346, 421, 422.
, 「기독교 강요」 초판에 대한 다른 출판물들 역시 이와 같은 언급들을 내포하고 있다. J.T. McNeill이 편집하고 F.L. Battles가 번역한 책 ,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Philadelphia 1975, p. 1602; J. Benoit & V. Glossaire (ed.), Tables et références, Paris p. 54.

가녹지 (A. Ganoczy)는 젊은 칼빈의 생성과 발전에 관한 그의 광범위한 연구에서, 부써의 「복음서 주석」 (Enarrationes perpetuae in sacra quatuor evangelia (1527, 1530, 1536))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 사이의 상관성을 지적했는데, 그가 말하는 상관성이란 다만 부써의 이 책이 「기독교 강요」 초판이 부써의 이 책에 의존되어 있다는 의존성에 의해 설명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Ganoczy, Le jeune Calvin, p. 166ff.
부써의 주석들이 불어로 번역 (1540, 1543)되기 전에 이미 그것들은 프랑스에 잘 알려져 있었다. J. Courvoisier, Une traduction française du commentaire de Bucer sur l'évangeli selon Saint Mattieu, Paris 1933.
스트라스부르그와 프랑스 사이의 관계는 프랑스에서의 복음운동의 발전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기독교 강요」와 부써의 주석에 대한 비교는 우리에게 최소한 세 가지 점에서 그 영향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번째로 그것은 주기도문에 대한 해석에서의 영향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랑이 했던 것처럼, 비록 그러한 영향이 노예적인 의존성은 결코 아니라할찌라도, 부써의 주석에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사상은 거의 대부분 칼빈에게서 재발견되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 Lang, ‘Die Quellen,’ p. 109; 참조. Ganoczy, Le jeune Calvin, p. 171ff.
칼빈은 자료를 부써에게서 빌려오지만, 비록 여기저기서, 심지어 형식에 있어서까지 부써가 사용한 구절들이 메아리쳐 울릴찌라도, 칼빈은 그것을 독립적으로 활용한다. 칼빈은 또한 루터의 소교리문답 해설도 사용했으나, 분명히 여기서는 부써에 대한 의존성을 보여준다. 부써가 말하는 기도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이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에 의해 기도되어져야 하는 것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이다.” (Adveniat regnum tuum, quae sane ab omnibus petenda) Enarrations perpetuae in sacra quatuor evangelia, 1530, p. 64.
이 그리스도의 나라는 또한 칼빈에게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다. 더우기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특징적인 것은 골방 즉 은밀한 장소에서의 개인적인 기도에 대한 강조이다. 부써에게 있어서 이것은 마음의 은밀한 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과 관련된 것이다. 칼빈 역시 마음의 참된 신앙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동시에 우리는, 봉독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찬송에서도, 교회의 중심에 있는 교제적 기도 (gemeenschappelijke gebed)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Ganoczy, Le jeune Calvin, p. 172.
기도에서의 개인적인 신앙경험은 교회의 교제와 하나됨을 저하시키지 않는다. 완전한 기도를 6개의 간구 (zes beden)로 구분하는 것이 특징적인데, 이것은 칼빈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부써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주기도문의 시작과 첫 간구에 대한 설명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원천적으로 부써적 신학을 여기서 우리는 신학적 동인와 사회적 동인이 조화되는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부써의 신학에 있어서 이러한 두 동인의 조화는 그의 첫 작품인, 「누구든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 관하여」 (Das ym selbs niemant, sonder anderen leben soll (1523)」에서부터 나타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인데, 즉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형제적 사랑을 동시에 권고하시는 것이다. Enarrationes, p. 64.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공경은 형제에 대한 사랑과 공경을 동반한다. 칼빈은 이러한 사상을 이어받는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각자가 자신을 위해 특별한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아버지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모두 다 함께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부르는 것인데, 그것은 형제 사랑에 대한 감정이 우리를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OS, I, p. 106.
우리는 주기도문의 시작에 대한 이러한 해석에서 수평적이고도 수직적인 하나됨 (inéén)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이것이 어떻게 실현되는가?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을 돌보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실현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영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이름을 고백하며 전적으로 우리자신을 주님께 맡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섬기게 되는 것이다. Enarrationes, p. 184.
칼빈에게서도 역시 이러한 사상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 (Regnum Dei)를 성령에 의해 통치되어지는 것으로부터 설명할 때, 동일한 역할을 한다. OS, I, p. 109.

여기서 배경이 되는 사상은 선택된 자들 (electi)과 유기된 자들 (reprobi)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다. 조금 뒤에 살펴보겠지만, 칼빈과 마찬가지로 부써도 역시 이 용어를 먼저 선택과 유기라는 심원한 비밀을 숙고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구분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는 신자와 불신자에 대한 정의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선택된 자들을 조명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곳에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유기된 자들을 눈멀게 하시고 그들을 강팍케 하신다. 그러나 부써도 칼빈도 그들 신학의 이러한 국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택설과 유기설을 교리화하지는 않는다. J.W. van den Bosch, De ontwikkeling van Bucer's praedestinatiegedachten vóór het optreden van Calvijn, Harderwijk 1922, p. 19ff.
이것은 부써에 의해 그의 방대한 1536년판 로마서 주석에서 주어졌던 것인데, 칼빈은 그것으로부터 1539년판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중요한 사상들을 전수받았다. 하지만, 지금 다루고 있는 1536년에는 두 사람 모두 동일한 방법으로 ‘선택된 자들’ (electi)과 ‘유기된 자들’ (reprobi)을 언급하는데, 즉 이러한 구분은 우리가 살고 있고, 부름과 칭의와 영화가 수행되어지는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세상적 경험 (ervaringswereld)에서 나오는 것이다. 칼빈이 선택과 유기에 관한 사상들 가운데 두번째의 그룹에서 부써에게 의존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W. van 't Spijker, 'Prädestination bei Bucer en Calvin,‘ p. 87ff.

의존성을 지적함에 있어서 세번째로 중요한 일치점을 우리는 교회의 열쇠의 힘 (sleutelmacht)에 대한 칼빈의 해석에서 발견하는데, 1536년판 「기독교 강요」의 제 5장에서 만난다. 칼빈은 거기서 로마교의 성례에 관하여 설명하고, 그와 관련하여 교회의 열쇠의 힘에 관하여도 설명한다. Ganoczy, p. 175ff.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마태복음 16장과 18장에 대한 그의 주석에 나타난 부써의 논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부써는 힘있는 강조점을 복음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죄의 용서에 대한 선포 (verkondiging)에 놓는다. 이것이 교회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거기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열쇠의 힘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인도되어지는 자들에게 속한다. 「복음서 주석」 (1527), II, p. 181 오른편.
성령 하나님의 힘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그 열쇠의 힘은 수행되어진다.
부써의 주석은 1526년의 독일 미사에 나타난 자발적 교회 (vrijwilligheidsgemeente)에 관한 루터 (Luther)의 사상들에 개입되어 있다. Luther, Deutsche Messe, 1526, WA 19, p. 75: “간단히 말해서, 만일 우리가 참된 기독교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개인들과 법과 형식이 거의 갖추어진 회중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나, 나는 아직그러한 공동체나 모임을 요구할 수도 의도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아직 그러한 회중과 개인들이 없고, 또한 나는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Kurtzlich, wenn man die leute und personen hethe, die mit ernst Christen zu seyn begerten, die ordnunge und weysen weren balde gemacht. Aber ich kan und mag noch nicht eyne solche gemeyne odder versamlung orden odder anrichten. Denn ich habe noch nicht leute und personen dazu, so sehe ich auch nicht viel, die dazu dringen.)
그러나 루터가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한 반면에, 부써는 이러한 생각을 고수했다. 부써는 그것을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스스로 시범을 보였던 가능성에 적용했고, 이러한 모델은 마태복음 16장과 18장에 나타난 교회치리에 대한 부써 자신의 정의에 따른 것이었다. 「복음서 주석」, 1527, p. 212 반대편, 214 반대편: “오늘날 이 시대가 그러하듯이, 만일 주님께서 자비를 베푸신 곳에서, 전 백성의 대부분이 정부와 함께 전심으로 그리스도께로 회심하지 않았다면, 공적으로 치리시행은 적용되어질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곳에서, 보다 온전히 그리스도께 헌신된 자들은,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린 모든 아는 사람과 이웃에게 신중하고 자비롭게 권고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매우 거룩하고 유익한 것을 상호 간에 적용해야 한다.” (...ut hodie res fere habent, excommunicatio publicitus exerceri non potest, nisi ubi Dominus eam gratiam faceret, ut maior totius populi pars, cum magistratu, ad Christum pleno corde converteretur. Ubi id non datur, necesse est, ut qui plenius Christum receperunt, sanctissimum hoc et saluberrimum Christi institutum inter sese reducant, ut quoscunque familiares, vel vicinos habent, qui Christo nomen dederunt, diligenter et libere moneant...)
칼빈은 열쇠의 힘에 대한 자신의 논의에서 부써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열쇠의 힘은 말씀의 설교와 연관되어 있는데, 그것은 순전히 복음의 설교 안에 존재한다. Ganoczy, 177ff.
칼빈 역시 모여진 공동체에 대해 강조했으며, 부써와 마찬가지로 열쇠의 힘 (potestas clavium)이 성령을 받지 않은 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을 강력히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 하나님께서 행해져야 할 것에 선행하시고 그것을 가르치시며 규정하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열쇠들의 결정적인 시행자시요 집행자” (clavium arbiter et moderator)이시다. OS, I, p. 188.
칼빈은 1536년도 판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에 대한 강조를 부써가 그의 1527년판 주석에서 했던 것 보다 더 강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써는 복음서 주석 제 3판 (1536)에서 이미 말씀과 성령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보다 강화시켰다. R.H. Grützmacher, Wort und Geist: Eine historische und dogmatische Untersuchung zum Gnadenmittel des Wortes, Leipzig 1902, p. 116-122. 1536년판 「복음서 주석」 42페이지부터 나타나는 반론들 (retractationes)과 비교해보라. 이것에 관한 부써의 신학적 발전에 대해서는 W. van 't Spijker의 「부써의 직분론」 (De ambten bij Martin Bucer) 112-119페이지를 보라.
어느 모로 보든지 「기독교 강요」의 초판이 중요한 점에 있어서 부써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부써의 신학적 발전

부써의 영향을 고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것이 1536년에 어느정도 결론에 도달했던 것처럼, 그의 신학에 대한 상 (een beeld)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부써의 권위는 ‘비텐베르그 일치 신조’ (Wittenberger Concordie (1536))의 수립과 함께 세워졌다. E. Bizer, Studien zur Geschichte des Abendmahlsstreits im 16. Jahrhundert, Gütersloh 1940, p. 117f.
그의 사고는 로마서 주석에 나타난 한 형식에서 발견되는데, 이 책은 종교개혁을 선도해가는데 있어서 가장 풍부한 가르침을 내포한 책 가운데 하나로서, 2절판의 양면 페이지로 507페이지 (오늘날의 책은 책을 펼쳤을 때 왼쪽과 오른쪽에 한 페이지씩 모두 두 페이지로 되어 있지만, 양면 페이지란 두 페이지를 한 페이지로 계산한 것이다. 즉 오늘날의 두 페이지를 한 페이지의 오른편 (recto)과 왼편 (verso)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역자주)이며, 1562년도 판에서도 653페이지를 넘는 것이다. Bibliographia Bucerana, R. Stupperich에 의해 편집, Gütersloh 1952, No. 55 과 55a; 비교. B. Roussel, Martin Bucer, lecteur de l'Epître aux Romains (신학박사학위논문), Strasbourg 1970.
부써의 명성은 특히 그의 「복음서 주석」에 기인된 것인데, 이 책을 그는 1527년부터 시작해서 3번 증보판으로 펴냈다. 거기에다가 그는 바울의 에베소서에 대한 작은 주석을 저술했는데, 이 편지는 왕립대학인 캠브리지 (Cambridge) 대학에서의 그의 강의에 나타난 것처럼, 그의 삶을 오랫동안 분주하게 만들었다. Praelectiones doctiss. in Epistolam D.P. ad Ephesios (...), Basileae 1562. Stupperich가 편집한 Bibliographie의 No. 112와 비교해보라.
루터의 전통은 갈라디아서와 강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혁주의 전통은 에베소서를 선호하는데, 이것은 부써와 칼빈 덕택이다. 부써는 명성을, 특별히 그가 저술한 첫 목회신학서를 통해 얻게 되었다. 목회에 관한 그의 저서 (「참된 목회에 관하여」 (Von der waren Seelsorge, 1538))는 스트라스부르그의 교회에 장로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수년간의 노력의 결과인데, 이 장로체제란 교회의 회원들에 대한 순수한 교회적 차원의 치리시행과 한 쌍을 이룬다. 그의 명성은 영국에서의 종교개혁의 급진적 수행을 위한 그의 대망의 계획서인 「그리스도의 나라」 (De Regnum Christi (1550))를 통해 더욱 높아졌는데, 이 책은 제네바에서 불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1558). 칼빈은 이 출판에 관여해야 했다. F. Wendel이 편집한, Martini Buceri Opera Latina 15권과 이 책의 불어 번역판인 Du Royaume de Jésus-Christ (Paris/Gütersloh 1954)을 보라.
그러나, 부써가 스스로 자신의 신학 사상들의 요약으로 간주한 작품은 지금까지 연구에 있어서 소홀히 여겨졌는데, 아마도 이 로마서 주석은 너무 어렵고, 참고하기에는 너무 장황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써는 칼빈처럼 명확한 요약 (perspicua brevitas) 형태로 정리하는 은사를 소유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주석이 부써의 역작 (Bucers opus magnum)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써는 자신의 개념들을 성경 자체와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발전시켰다. 이 스트라스부르그의 개혁 신학은 성경 석의로부터 획득된 것이다. 이러한 석의를 통해 부써는 근원에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는 인문주의적 사상에 충실했다. 부써는 자신의 석의를 다른 종교개혁가들, 즉 쯔빙글리 (Zwingli)와 루터, 그리고 외콜람파디우스 (Oecolampadius)과의 지속적이면서 좀더 깊은 대화와, 특히 스트라스부르그의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을 통해 수행해 나갔다. 그러나 그는 에라스무스 (Erasmus)가 좋아했던 것 이상으로 유대적 해석을 열렬히 사용했던 최초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1529년판을 올리버 로버트 스테이펀 (Oliva Roberti Etephani)이 1554년도에 새로 편집한 부써의 작품 Psalmorum libri quinque ad Hebraicam veritatem traducti와 알런 (P.S. Allen)이 편집한 Opus Epistolarum Des. Erasmi Roterodami의 제 3권 252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에라스무스가 카피토 (Capito)에게 보낸 1518년 3월 13일자 편지 “Praefatio”와 비교해보라.
그러나 특히, 그는 교부들 (patres)에 대한 철저한 연구에 열중했는데, 이것은 칼빈이 처음에는 전반적으로 잘 평가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는 부써를 계승하게 된 그러한 열심이었다. 이 주석은 “ ...공통의 자리들은, 그러나 성경이라는 근원으로부터, 교부들의 권위에 의해 지지되어진.” (loci communes, sed ex fonte Scripturarum, adhibita autoritate patrum)을 내포한다. 비교. W. van 't Spijker, De ambten, p. 129, n. 117. 칼빈이 부써가 지나치게 교부 의존적이라고 비평한 것에 대해서는 CO, X, p. 142f 참조.

부써는 인문주의에 의해 형성되었었다. 이것은 근원에 대한 커다란 관심에서 뿐만 아니라, 이에 못지 않게 그의 신학의 윤리적 경향에서도 나타났던 것이다. 부써는 비록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 개념들에 대해 루터가 비평한 점에 있어서 루터를 전적으로 지지했지만, 다른 면에서는 결코 에라스무스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N. Peremans, Erasme et Bucer d'après leur correspondance, Paris 1970; 「마르틴 부써의 라틴어 작품집」 (Martini Buceri Opera Latina) 제 1권에 들어 있는 아우구스떼인 (C. Augustijn)이 편집한 “변증서” (Epistola apologetica) 61페이지부터 보라.
인문주의 학교는 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1518년에 있었던 루터와의 만남이었다. 루터가 하이델베르그 (Heidelberg)에서 십자가의 신학을 외쳤을 때, 부써는 종교개혁의 편에 가담하게 되었다. W. Pauck, “Luther and Bucer,” in: The heritage of the Reformation, p. 73-83.
그러나 그가 과거에 배웠던 중요한 요소들을 한쪽으로 치워버리지 않고, 자신의 사고 속에 통합시켰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부써는 모든 면에서, 여러 입장들을 서로 화해시키고 분파를 통일시키며 또한 신학들을 하나의 공통분모 위에 서도록 하기 위해 분주했던 통합의 사람이요, 화해 (reconciliatio)의 사람이었다. 실제적인 정치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의 사고 방식에 있어서도 이미 그는 중재자 (bruggenbouwer)였는데, 그의 사고방식이란 폭넓게 보편적이라는 것과 그로 하여금 성경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했던 동인들과 방법들에 대해 열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특히 그가 자신의 토마스 아퀴나스적 유산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설명될 수 있다. 비록 그가 1520년대에 바세르부르그 (Wasserburg) 출신의, 즉 “사람들이 아퀴노 출신이라고 부르는” (den sye von Aquino nennen) 토마스에 대해 거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의 연구에 있어서 결정적인 시절에 부써는 토마스에 매우 심취했는데, 이로 인한 토마스의 영향은 그의 성찬론 논쟁에서 사용한 형식과 개념이해의 수단 (begrippenmateriaal)에서 뿐만 아니라, 특히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대두되는 것과 같은 통합에 대한 의지에서도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L. Leijssen, Martin Bucer en Thomas van Aquino. De invloed van Thomas op het denkpatroon van Bucer in de Commentaar op de Romeinenbrief (1536), I, II (박사학위논문), Leuven 1978; L. Leijssen, Martin Bucer und Thomas van Aquin, Sylloge Excerptorum, Vol. 11, nr. 4, Leuven 1979.
아마도,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부써를 분류한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루터는 부써를 쯔빙글리파로 보았다. 1529년의 말부르그 (Marburg) 종교회의 때에.
불링거 (Bullinger)는 그를 루터파로 취급했다. Heinrich Bullinger Werke, II, 2, Briefe des Jahres 1532, Zürich 1982, p. 42ff.; 176f.; 부써가 불링거에게 보낸 1532년 8월의 중요한 편지 191-232페이지를 비교해보라.
1538-1541년 사이에 있었던 종교회의 당시의 그의 행동에 있어서 그는 그의 지나친 중재열의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그의 입장의 불명료성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서 의심 받는다. 부써의 참된 의도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부써의 위대성을 확신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부써를 공개적으로 존경한 칼빈이었다. 일치와 영향에 대해서는, 오직 부써와 칼빈 사이에 있는 깊이뿌리내린 유사성으로부터 설명할 수 있다. 이 유사성만이 영향을 가능하게 만든다.

부써와 칼빈의 유사성

이 유사성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주로 성령론에 대한 일치에서 찾는다. 칼빈과 마찬가지로 부써에게도, 사람들은 “성령의 신학자”라는 칭호를 주었다. W.P. Stephens, The Holy Spirit in the Theology of Martin Bucer, Cambridge 1970; L.G. Zwanenburg, “Martin Bucer over de Heilige Geest,” in: Theologia Reformata 8 (1965), p. 105-129; S. van der Linde, De leer van de Heilige Geest bij Calvijn, Wageningen 1943; W. Krusche,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nach Calvin, Göttingen 1957.
종교개혁 그 자체는 성령의 가르침에로의 결정적인 전환이었다. J. Koopmans, Het oudkerkelijk dogma in de Reformatie bepaldelijk bij Calvijn, Wageningen 1938, p. 102ff.: “교리사적으로 말한다면, 종교개혁의 의미는 성령에 관한 가르침의 발견과 결과에 놓여 있다.”
그러나 특히 스트라스부르그와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사람들은 성령의 고백을 바르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칼빈에게서 잘 알려진 사실은
그가 종교개혁을 성령 사역에 대한 바른 관점의 회복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사돌렛 (Sadoletus)에게 보낸 편지에서 칼빈은 독특한 방법으로 재세례주의자들과 영성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카톨릭을 한 계열로 보았다. 즉 양쪽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무덤 위에서 그들의 승리를 자축하기 때문이다. OS, I, p. 465.
양쪽 모두 성령 하나님께 호소한다. 칼빈은 그의 성령에 대한 고백으로 로마 카톨릭과 영성주의자들 사이에 위치한다. S. van der Linde, p. 19f.

그것은 부써에게 있어서도 동일하다.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여, 부써는 성령과 말씀에 호소한다. “Handel mit Cunrat Treger,”이라는 글 안에와 같이, Martin Bucer Deutsche Schriften II, p. 15-173.
그러나 재세례파에 대항하여 그는 말씀과 성령에 호소했다. 1533년의 총회 (synode)와 그 이후의 총회에서와 같이, W. van 't Spijker, De ambten, p. 115f를 보라.
우리는 여기서 루터파 개신교와는 다른 전형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를 만나게 된다. 루터는 이것을 1529년의 말부르그에서 그가 한 날카로운 비난에서 느꼈는데, 그 때 그는 부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다른 영에 속한다.” W. van 't Spijker, “Gij hebt een andere geest dan wij.” 루터가 1529년 10월 3일 주일에 말부르그에서 부써에게 한 말, in: Uw knecht hoort. Theologische opstellen aangeboden aan W. Kremer, J. van Genderen en B.J. Oosterhoff, Amsterdam 1979, p. 65-83.
그리고 이것으로서 루터는 스스로, 루터파와 쯔빙글리파 사이의 차이점은 성령 하나님의 고백과 관련되어 있다고 받아들였다. 이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루터파와 개혁주의 전통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부써와 칼빈이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를 이해했던 것이다. 성령론에 있어서 유사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점에서 영향을 주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부써와 칼빈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곳에서 서로를 가장 잘 말할 수 있었다.
부써는 성령의 신학자이다. 제이베르그 (R. Seeberg)는 그를 중재신학자 (Vermittlungstheologe)로 불렀는데, 이는 그가 멜랑히톤 (Melanchthon)이 했던 것처럼, 루터의 사상들을 완전히 그 자신의 방법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R. Seeberg, p. 556.
리츨 (O. Ritschl)은 이 성령에 대한 고백을 “부써의 전 사상세계의 주된 개념” (die leitende Idee in der ganzen Gedankenwelt Bucers)이라고 불렀다. O. Ritschl, p. 129.
베버 (H.E. Weber)는 부써의 신학을 그리스도 중심의 윤리적 성령의 신비 (Christocentrische ethische Geestesmystiek)로 묘사한다. H.E. Weber,p. 203.
아담 (A. Adam)은 “부써의 전 체계 가운데 성령에 대한 개념이 핵심적인 것” (im Gesamtsystem Bucers der Geistbegriff die Mitte einnimt)이라고 생각했다. A. Adam, p. 330.
스투페리히 (Stupperich) 역시 성령에 대한 관심은 다른 종교개혁가들 보다 부써에게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R. Stupperich,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VII, Berlin/New York 1981, p. 265.
노이저 (W. Neuser)는 성령론이 부써 신학의 “고유성” (proprium)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W. Neuser, p. 224.
예를 들면, 스테이펀스 (W.P. Stephens)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계속되는 연구는 부써가 종교개혁가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으로 불리웠고 완전히 성령의 신학자로 불리웠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A. Lang, Evangelienkommentar, p. 8; 120ff.; 373f; 비교. A. Lang, Puritanismus und Pietismus, Neukirchen 1941, p. 13.

칼빈도 또한 동일한 방법으로 묘사되었다. 워필드 (B. Warfield)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죄악된 인간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을 알려주시며 죄악된 인간을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다룬 책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는 칼빈을 성령의 신학자로 부르기를 원했다. B.B. Warfield, Calvin and Augustine, Philadelphia 1956, p. 481ff.
랑은 성령의 신학자라는 이 이름을 제네바의 신학자에게도 주었다. A. Lang, Evangelienkommentar, p. 371f.: “부써의 신학의 고유한 생명 결국 칼빈의 출현과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결정적인 점에 있어서 칼빈주의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Denn das eigentliche Leben der Theologie Butzers geht zu Ende mit dem Auftreten Calvins: sie mündet an allem massgebenden Punkten in den Calvinismus ein)
이러한 묘사의 진실성은 크루숴 (W. Krusche) 의 가치있는 연구인 「칼빈이 말하는 성령의 사역」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nach Calvin)이라는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
칼빈과 부써 두 사람 모두 성령론은 기독론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만일 우리가 쯔빙글리에게서 가끔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역이 사라져버리는 영화된 기독론 (gespiritualiseerde christologie)을 고려해야 한다면, A.E. Burckhardt, Das Geistproblem bei Ulrich Zwingli, Bazel 1932.
부써와 칼빈에게서는 그리스도의 승귀하심이 매우 강조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왕직은 그의 영의 능력을 통한 그의 화해하시는 통치의 수행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으로 화해를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역은 역사 속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조화롭게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가 로마서에서 우리를 종교개혁의 심장에로 인도하는 맥박을 느낄 때, 우리는 루터에게 있어서 그 맥박은 로마서 1장 17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루터는 특히 칭의의 이적이 이 서신의 메세지라고 생각했다. 부써에게 있어서 그것은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성화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부써에게 있어서 두드러지는 것은 로마서 8장에서 설교되어진 것처럼 칭의라는 주제가 성령의 사역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부써의 신학을 특징지우는 것으로서 로마서 8장 28-30절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W.P. Stephens, p. 271, n. 1.
그는 선택과 부르심, 칭의 그리고 영화 사이의 통합을 모색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들을 가지고 부써의 신학과 칼빈의 신학을 비교하고, 칼빈에게 미친 부써의 영향을 지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부써와 칼빈에게 있어서 선택

부써는 자신의 선택론을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폭넓게 발전시켰다. 그 발전의 초기 단계는 신자와 불신자라는 것에 부합하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서 선택된 자들과 (electi)과 유기된 자들 (reprobi)에 대한 실천적이면서 거의 사색적이지 않은 설명으로 특징지워진다. J.W. van den Bosch, p. 19ff.; 24ff.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 (benignitas)는 우리의 확실성의 근거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러한 신앙의 확실성을 발견한다. 선택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의 (in) 선택인데, 이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propter Christum)와 동일한 의미이다. 이 확실성은 영원한 기뻐하심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화해와 성령의 사역 안에서 그 근거를 가진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 예정에 대해 말할 때, 그는 부써와 동일한 방식으로 말한다: 그것은 사람이 매일 관찰할 수 있었던 경험적 사실 (ervaringsfeit)에 대한 해석이었다: “두 사람이 한 설교와 한 복음을 들을 때, 한 사람은 집으로 가서 그것을 내뱉고 무시하고 욕하고, 다른 사람은 마음에 새기고 주님께 그의 풍성한 자비를 감사하고, 들은 말씀을 강하게 확증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비교. W. van 't Spijker, “Prädestination bei Bucer und Calvin,” p. 88.
설교의 다양한 효과는 성령의 사역이다. 부써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성령의 사역을 예정과 연결시켰다. 상게서, p. 90.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자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다.” 부써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행하시며 하나님만이 모든 행위의 주체 (de alwerkzaamheid en alleenwerkzaamheid van God)이시라는 개념을 예정과 연결시키되, 성령론을 통하여 연결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영성주의의 위험이 보다 더 분명하게 됨에 따라, 그에게 있어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문자와 성령 사이의 대조는 줄어들었고, 하나님의 사역과 후에 살펴 볼 은혜의 수단 (media gratia)의 의미 사이가 보다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예정에 대한 관심을 강화시켰는데, 이것에 대해 부써는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폭넓게 설명했다.
그의 선택론에 대한 몇몇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과 같다.
부써는 선택에 대한 설명을 구원의 서정에다가 맞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서는 시간의 연속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부터 선택하신 현재적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시키시는 “적절한 순서” (elegans gradatio), Metaphrasis et Enarratio in Ep. D. Pauli ad Romanos, Basileae 1562, p. 407.
즉 구원의 서정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 부써는 이러한 구원의 서정 (ordo salutis)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통해 구원의 역사적 성격을 확고히 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영원한 선택개념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일은 방지되었다. 하나님의 선택은 역사 속에서 실현된다.
두번째로 두드러진 사실은 부써가 결코 복음의 진실성과 신실성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은 우리가 경배하는 그분의 전능하심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는 그분의 신실하심에서도 계시된다.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때, 우리는 또한 우리가 참으로 부름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해 보아야 하며, “나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 상게서, p. 411: “그러므로 모든 악한 시험 가운데 우두머리 격인 이러한 질문, 즉 ‘만일 우리가 예정되었는가?” [라는 질문]은 제거되어야 한다.” (Ergo tanquam caput omnis noxiae tentationis repellenda est Laes ('Laes'는 잘못 인쇄된 것이다. 이 단어는 원본에 ’haec'으로 되어 있다: 역자주) quaestio, Simus ne praedestinati); 비교. W. van 't Spijker, “Prädestination bei Bucer und Calvin,” p. 94f.
는 약속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너무나도 해로운 시험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간주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정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또한 자신이 부름을 받았는지 혹은 의롭게 되었는지를 믿을 수 없다. 즉 그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선택의 확실성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 속에 놓여 있다. 상게서, p. 411: “여기서부터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우리를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보다 확실히 서 있도록 하는 자리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 his facile patet, praedestinationem Dei de nobis et aliis, in hoc esse considerandam, quo confirmetur nobis in promissionem Dei...)

세번째로 부써에게 있어서 특징적인 것은 그가 후자로 부터 (a posteriori)라는 취급 방법이다. 상게서: p. 412: “그러므로 ‘복음을 믿으라’, 그래서 당신은 왔으며, 이것 때문에 당신에 관해 [당신이]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 후자로부터 의심되어질 수 없으며, 계획에 따라 당신은 부름 받고 예정되고 선택된다.” (Tu ergo crede Evangelio et venisti indeque a posteriori dubitari de te non poterit, quin praescitus, et secundum propositum vocatus, praedestinatus et electus sis)
선택의 결과로부터 (ex effectu) 선택 그 자체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고, 그래서 보다 나은 확실성에로 나아갈 수 있다. 상게서: “이로 말미암아 당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당신의 부르심과 선택에 대한 확실성은 보다 확고해 진다.” (hoc tibi et aliis magis firmatur certitudo de tua vocatione et electione); p. 402: “하나님의 예정의 결과로부터, 그리고 성부께서 그를 끌어 당기시지 않는다면 아마도 성자에게로 오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하나님의 예정]은 알려 질 수 있다.” (... ex effectu destinationis divinae et eo quod nemo venit ad filium nisi pater traxerit eum agnoscendam reliquit)
실천적 유추 (practisch syllogisme, 대개 “실천적 삼단논법”으로 번역됨: 역자주)란 약속을 믿는 믿음과 같이 그 자신의 확실성을 가지는 믿음의 유추이지만, 그 안에서 선택을 되돌아 봄으로써 강화되는 것이다.
네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다. 상게서, p. 409.
그의 구원사역 (heilswerk)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한 구원의지 (heilswil)를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선택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 생명 안에서 자신의 아들에게로 인도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도록 하신 자들과 연관되며,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이끌려 접붙여진 것처럼, 그의 의지를 따라 중생시키시고 성화시키신다. 상게서, p. 409, 410.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영원 속에 두셨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서 그의 백성들을 그와 같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묶으셨으며 그들은 그와 함께 하나의 나무가 되었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다. 상게서, p. 407.

이제 부써의 주석을 다룬 후에 칼빈의 주석과 그의 1539년판 「기독교 강요」를 살펴보면서, 칼빈이 동시에 두 가지 작품 모두에 그의 힘을 쏟아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써의 작품과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점들을 많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치는 칼빈이 부써의 작품을 사용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만 설명될 수 있다. 칼빈은 로마서를 해설함에 있어서 부써의 주석에 있는 중요한 사상들을 빌어오는데, 단지 8장에 대한 해설에서 뿐만 아니라, 9장에서도 또한 문자적 일치가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부써의 해석과 비교한다면, 여기서도 의존성이 드러날 것이다. W. van 't Spijker, “Prädestination bei Bucer und Calvin,” p. 102ff.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기독교 강요」에서 예정의 구원론적 위치인데, 이것은 그의 심오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칼빈으로 하여금 선택개념을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토록 방지해주는 것이다. 상게서, p. 104.
부써와 칼빈 두 사람 모두 성경에서 그들이 했던 것처럼 그와 같이 예정에 대해 설명해야할 의무를 느끼는데, 즉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할 만한 설명에 대한 의무감이다. 칼빈에게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은혜의 우선성을 배제하지 않는 후자로부터 (a posteriori)라는 것이다. 부써와 마찬가지로 칼빈은 경험적 실제 (ervaringswerkelijkheid)로부터 선택의 결론에로 나아간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 역시 칼빈에게서 크고도 주된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선택의 거울이신데, CO, I, p. 867; W. van 't Spijker, “Prädestination bei Bucer und Calvin,” p. 105f.
마치 신자들에게 있어서 공로에 대한 모든 형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불확실성에 대한 모든 형식은 이것을 통해 사라진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선택의 생명의 근원, 즉 선택에 대한 지식의 근원이시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의 비밀을 발견하는 새 생명을 위한 능력의 근원이시다. 경건의 윤리적 성격과 우리의 부름에 따른 거룩한 삶에 대한 강력한 요청은 그 근거를 여기서 발견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써에게 있어서도 역사화하는 요소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역사 속에서 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구원역사 속에서 획득되는데, 이 구원 역사 속에서 구약은 신약에 의해 교체되었고, 만물은 이제 완성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구원, 이 영원한 자비는 또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는 사람의 삶에서 형태를 획득한다. 구원은 실제 위에서 배회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서정에 따라 일반적인 삶의 실제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삶 속에 온전한 복음이 제한 없이 설교되어질 수 있다. CO, I, p. 863; Enarratio in IV Evv., 1536, p. 672; Metaphr. in Ep. ad Rom., p. 528.
여기서도 칼빈은 부써와 일치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은혜의 설교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는 힘과 추진시키는 비밀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두 사람 사이의 유사성은 의존성이 인정될 때만이 설명 가능하다.

부써와 칼빈에게 있어서의 부르심

부써가 부르심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관점에서 진행시켰던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사람들은 그 발전의 초기에서 영성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A. Lang, Evangelienkommentar, p. 128.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여 부써는 재차 성령의 필요불가결한 사역을 지적했다. 그의 1527년판 「복음서 주석」에서 어떻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설명을 통해 부써는, 자연의 빛 보다 훨씬 강한 한 빛에 관하여 말한다. 그 빛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어진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능이 불명료하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부르신다. 하지만 이러한 부르심은 숨기워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만 권고된다. 1527년판 「복음서 주석」의 제 1권 28페이지 왼쪽과 29페이지 오른쪽을 1536년판 「복음서 주석」의 23페이지와 비교해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발견되실 것인가” (Quomodo Christus invenietur); 참조. W. van 't Spijker, De ambten, p. 114, n. 41.
로마 카톨릭과의 대립은 그로 하여금 모든 강조점을 성령 사역의 중요성에 놓게 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 들리는 최종적인, 결정적인 음성, 즉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음성은 성령의 음성이다. Martin Bucers Deutsche Schriften II, p. 37.
부써는 이러한 주장으로 말미암아 영성주의자들에 가까이 다가 갔다. 그러나 재세례파와 영성주의자들과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편향적인 접근의 위험성을 보게 했다. 성만찬의 개념과 관련하여 루터와 일치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들을 통해 부써는 말씀의 중요성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는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부써는 그의 「복음서 주석」의 여러 곳에서 이것에 대해 설명한다. 항상 그는 그의 대화 상대자의 입장을 고려한다. 그러나 그가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부터 분리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말씀이 외적으로 가르치는 그것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주신다. 상게서, p. 240: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dann wir bekennen ye beide theyl es sey das Wort Gottes.)
하나님의 부르심은 외적인 부르심이지만, 성령을 통해 그것은 또한 내적 부르심이 된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상호 종속적이다. 영성주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부써는 이원론을 극복할 길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재세례파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해야 했던, 잘 알려진 1533년의 스트라스부르그 총회는 말씀과 성령의 관계에 관하여 논의했는데, 거기서 부써는 내적인 말씀과 외적인 말씀이 있다고 인정했다. 일반적인 법칙은 하나님께서 성인들에게 내적인 말씀을 외적인 말씀의 수단을 통하여 제공하신다는 것이다: “만일 말씀봉사자들을 통한 외적인 가르침 없다면, 일반적으로 성인들 가운데 어느누구에게도 성령의 내적 가르침을 제공하지 않으신다.” (Ordinarie nemini adultorum interam spiritus doctrinam largitur absque externa per ministros) “Contra Bernh. Wacker,” in: M. Krebs & H.G. Rott, Quellen zur Geschichte der Täufer, VIII, Gütersloh 1960, p. 193-197; “Butzers Bericht über dem eusserlichen und innerlichen wort,” p. 198ff.
부써는 하나님 자신과 우리가 그분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가리킴으로써 문제 전체를 초월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의 주체 (voornaamste Spreker)이시다: “주체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Deus principalis loquens) 상게서, p. 197.
그와 같이 부써는 실제적인 문제를 넘어서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성찬론 논쟁의 승리를 통해 그것에 대한 보다 잘 준비된 기회를 발견했다. 그가 루터와 관련된 자신의 융통성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복음서 주석」 제 3판에 덧붙인 유명한 「반론」 (Retractatio)에서, 그는 이전의 해석에로 되돌아 갔다. 앞에 나오는 각주 36번을 보라.
지금 그는 설교된 말씀의 중요성에 강조점을 둔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하기 전에 신앙 그 자체는 존재하며, 신앙이 있기 전에 복음에 관한 설교가 있다. 그러므로 합당한 방법으로 은혜의 도구과 통로와 기관으로서 은혜의 수단들에 관하여 말할 수 있고 말해도 좋다. 부써는 완전히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자신의 생각이 머물러 있는 곳에 도달했다: 주님께서는 복음에 대한 외적인 설교를 통해 우리를 부르신다. 그와 같이 부써는 로마서 10장의 “들음으로부터 나는 믿음” (ex auditu fides)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복음의 외적 설교에 의해서만 믿음이 역사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 믿음이 선물이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겠는가? 사도들이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다만 주님께서 자신의 선택된 백성에게 믿음을 심어주시기 위해 외적인 설교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Mataphr. in Ep. ad Rom., p. 488.
복음을 듣지 않고 믿음에로 나아오는 것과 영원한 삶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이 말씀을 설교한다. 부써는 사람들이 영혼은 외적인 음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에 의해서 교육되어질 수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을 궤변이라고 생각한다. 성령과 외적인 음성은 하나에 속한다.
말씀과 성령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통해 신자의 어머니로서의 교회이자 동시에 성도의 교제인 교회의 의미를 위한 길이 열리게 되었다. W. van 't Spijker, De ambten, pp. 82-90.
부써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 그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교제에로 부르시기 때문이며,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성도들 상호간의 교제이기 때문이다. 부써에게 있어서 보다 특이한 것은 부르심 (vocatio)을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신자들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계획과 능력에 따라 그의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 한가운데 있는 일을 수행해야하는 부르심으로 정의하는 경우가 있다 것이다. 상게서, p. 83.

부써는 이 길을 영성주의에서 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는데, 여기서 부르심이란 복음에 의해 매일의 삶 속에 있는 부르심과 분리되지 않으며, 직분에로의 부르심 또한 교회 내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부써가 교회 안에서 외적인 말씀의 봉사를 통해 설교되어진 모든 것들을, 성령과 관련시키고 예정과 관련시킴으로써, 심화시키고 동시에 확장시켰으며, 그 결과 전 생애를 포함한 신정적 관점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발전의 성숙한 결과를 우리는 그의 마지막 저술인 「그리스도의 나라」 (De Regno Christi)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복음의 핵심으로부터, 넓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중심부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이 전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W. Pauck, Das Reich Gottes auf Erden. Utopie und Wirklichkeit, Berlin/Leipzig 1928.

그리고 또한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런 점들에 있어서 부써가 칼빈 보다 선구자였다는 것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칼빈은 결코 부써가 겪은 것과 같은 영성주의의 시련을 겪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말씀과 성령에 관한 칼빈의 견해는 잘 균형잡힌 것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념에 있어서는 신학적으로 성숙했을 때의 부써의 개념과 전혀 차이가 없다.
「기독교 강요」에서 만나게 될 세 가지의 사상을 우리는 지적할 수 있다. 첫번째는 말씀과 성령 사이의 협력 (coöperatie)에 대한 사상이다. 여기서 이것은 특히 설교된 하나님의 말씀, 가르침 (doctrina)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뤼츠마허 (Grützmacher)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할 수 있다. “말씀과 성령에 관한 칼빈의 전체 설명은 근본적으로 부써와 연관되어 있다.” R.H. Grützmacher, p. 121.
특별히 이 점에서 부써의 신학은 칼빈 신학의 전(前)단계 (voorstadium)인 것으로 보인다. 상게서, p. 122.
이러한 언급의 진실성은 칼빈의 로마서 주석과 부써의 로마서 주석의 비교에서 뿐만 아니라, 부써가 그에 앞서 행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 「기독교 강요」 그 자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CO, 2, p. 59.
성령께서는 말씀을 우리의 마음 속에 있게 하신다. 말씀과 성령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뤼츠마허). R.H. Grützmacher, p. 124.
“말씀과 성령의 상호 관계를 통해 그것은 신앙의 확실성에 이르게 된다.” (Mutuo enim quodam nexu Dominus verbi spiritusque sui certitudinem inter se copulavit CO, 2, 71.
CO, 2, 71) 이러한 방법으로 칼빈은 부써 역시 목표로 삼았던 것을 성취했다: 그는 말씀의 무한한 가치에서 아무 것도 제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Summa doctrinae de ministerio verbi et sacramentorum, CO, 9, p. 773을 보라.
그리고 그는 동시에 예정의 중요성에서 아무 것도 제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 둘을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연관시킬 수 있었다. “효과적인 부르심이란 이전에는 숨겨졌던 선택이라는 것의 성취와 다른 무엇인가?” (Quid enim aliud est efficax vocatio, quam electionis, quae prius latebat, complementum) CO, 8, p. 39.
부르심에서 선택은 성취된다.
보다 더 부써적인 두번째 사상은 성도의 교제에 대한 것인데, 거기서 부르심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복음이라는 기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다. 그러나 이 믿음은 동시에 우리를 성도의 교제와 연결시킨다. OS, 5, p. 7-12.
왜냐하면 하나됨의 거룩한 띠를 유지시키는데 있어서, 복음을 통한 부르심 보다 더 강력한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외적인 연합 (externa societas Ecclesiae)은 복음의 설교에 의해 함께 유지되어진다. 칼빈에게 있어서도 부르심 (vocatio)은 성도의 교제 안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여기서 신자는 각자 자신의 고유한 부르심 (vocatio)을 받는다. 부르심과 직업은 상호 종속적이다. W.J. Aalders, Roeping en beroep bij Calvijn, Amsterdam 1943.
세번째 사상 역시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넓게 확대시켰다. 각자는 자신의 고유한 신적 부르심의 직분 (munus divinitus vocatus)에로 부름 받는다. 상게서, p. 17: “그는 한 아담 안에서 “영원하고도 정해진 부르심” (vocatio aeterna et ordinata)과 “신적 부르심의 직분에 대해” (ad munus divinitus vocatus) 말한다.”
그것은 칼빈이 기독교적 삶에 관한 그의 취급에서 거의 서정적인 방법으로 설명한 그의 사상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Dei sumus, nostri non sumus) OS, 4, 151.
그래서 우리 각자는 자신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부써와 칼빈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상은 교회론에서도 유용하게 적용되는데, 여기서 특별한 직분 혹은 특별한 부르심은 교회 안에 있는 부르심들 (vocationes)을 격려해야 한다. 즉 각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성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른 행위의 원리요 근본이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경건에 대한 열심 (studium pieatis)을 발견한다. K. Koch, Studium Pietatis. Martin Bucer als Ethiker, Neukirchen 1962.
이러한 넓고도 동시에 깊은 부르심의 개념에 있어서 부써와 칼빈은 서로 매우 가깝다. 그러므로 전 생애는 거룩함에로 부름 받는다.

칭의에 관한 부써와 칼빈의 개념

이 주제는 부써의 신학에 있어서 많이 논쟁되는 부분인데, 몇몇 사람들의 판단에 의하면 부써가 종교개혁의 특수한 신앙고백인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을 공정하게 다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T. Stadtland, Rechtfertigung und Heiligung bei Calvin, Neukirchen 1972, p. 71ff.
칼빈이 1538년 1월 12일자 편지에서 부써의 칭의론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CO, 10, p. 137ff.: “나에게 항상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 것은, 당신이 이신칭의를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 id mihi nullo modo ferendum semper visum fuit, quod fidei iustificationem illic a fundamentis evertebas) c. 143.
칼빈은 부써가 칭의론에서 근본이 되는 것을 제거했으며, 루터가 쯔빙글리 (Zwingli)와 오이콜람파디우스 (Oecolampadius)의 칭의론 보다 부써의 칭의론에 대해 더 화를 내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현대의 연구가들 역시 칭의에 대한 부써의 개념을 혹평했다. 엘바인 (Ellwein)은 부써가 칭의와 성화를 너무 밀접하게 연관시킴으로써 십자가의 신학 (theologia crucis)이라는 길을 떠난 것으로 판단했다. E. Ellwein, Vom neuen Leben (De novitate vitae), München 1932, p. 114.
그의 판단대로라면, 아울러 종말론적 긴장조차 부써의 신학에서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베버 (H.E. Weber)는 부써가 그러한 자신의 개념을 가지고 정통 (orthodoxie)의 문제를 취급했는데, 거기서의 강조점은 은혜의 심판에 있어서의 의 보다는 오히려 삶에 있어서의 의에 있다고 판단했다. H.E. Weber, p. 221ff.

부써의 칭의론을 연구한 바르니콜 (H.M. Barnikol)은 그것을 법정적-효과의 (forensisch-effectieve, 이 개념은 칭의가 법정에서 의롭다라고 판정될 만한 효과를 지닌 것임을 의미한다: 역자주) 칭의론으로 규정짓는다. H.M. Barnikol, Bucers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박사학위논문), Göttingen 1961, p. 98.
부써는 이러한 사실을 가지고 은혜가 우리의 삶에서 헛되지 않음을 매우 진지하게 논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부써는 이중 칭의를 말한다. “믿음으로 말마암아 우리는 의롭게 되는데, 즉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되어 진다 (iusti efficimur)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우리의 행동과 말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게 되어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의롭다고 선언되고 지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iusti declaramur et indicamur). W.P. Stephens, p. 48ff.; Enarrationes in IV Evv. 1536, p. 314.

효과적 칭의 (effectieve rechtvaardiging)는 부써가 하나님의 의와 관련해서 성경에서 발견한 것의 표현일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하나님의 의 (iustitia Dei)는 부써에게 있어서 복합 개념인데, 그것은 새롭게 하심 (vernieuwing)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동시에 이야기 되기 때문이다. 의는 선물 (donum)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행위 (opus)이기도 하다. Metaphr. in Ep. ad Rom., p. 50.
부써가 충분히 용서의 은혜로운 성격을 표현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유일한 의는 우리의 불의가 용서되어지는 것이다.” 상게서, p. 5.
하지만, 칭의는 죄의 용서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의의 수여이다. 「로마서 주석」에서 부써는 삼중적 칭의에 대해 논한다. “즉, 삼중적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가하신다. 첫째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우리를 위해 예정하신 것이다. 이 방법은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한 것이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정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공하시되 우리에게 자신의 성령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아바 (Abba),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즐길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 칭의는 나아가 또한 우리의 믿음 속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은혜로운 선하심에 따라 주시며, 자신의 영을 통해 그것을 우리 속에 역사하도록 하신다. 세번째 방법은 바로 이것인데, 하나님께서 실제로 완전히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또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선한 것들을 선물로 주시되, 믿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소망 안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칭의에 있어서 우리의 행위 (hetgeen wij doen)는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행위 그 자체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하심의 선물이요 역사이다.” 상게서, p. 119.

부써는 결코 자신의 칭의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은혜의 무상성을 손상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가 이러한 이중 또는 삼중의 칭의를 말하는 것은 삶의 새로워짐 (nieuwheid)을 직접적으로 죄의 용서와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다. 끝까지 그는 이러한 개념을 견지했다. 심지어 캠브리지 (Cambridge)에서의 강의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듣게된다. “칭의는 이중적인 것이지 단수적인 것이 아니다. 칭의는 믿음과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후자인 행위의 칭의는 믿음의 칭의에 의존적이며, 참된 산 믿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선행으로 구성된다.” Praelectiones doctiss. in Epistolam D. Pauli ad Ephesios, Basileae 1562, p. 62.

우리는 여기서 부써 신학의 윤리적 요소가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혹은,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의 관계가 견지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적 성격이 여기서 고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부써 자신에게 있어서 그가 이러한 방법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의와 우리에 의해 실천되는 의와 관련된 성경 말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칭의에 관한 이러한 표현의 가장 깊은 동기를 찿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 대한 부써의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 H.E. Weber, p. 214.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그리스도 안에 거함,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와 그 분 안에 거하는 우리 Scripta Anglicana, Basileae 1577, p. 694ff.
에 관한 그의 글은, 특히 성찬에서 알려진 것처럼, 간단히 말해서 부써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말하는 것은 우리를 새로운 삶에 대한 그의 신학의 중심부로 안내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나타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에 임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확실히 신자에게 실제로 임재하신다.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교제라는 개념이 부써에게 있어서 유일한 공로성을 우리 행위에 돌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서만 의롭게 되어진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와의 교제 (unio cum Christo) Praelectiones, 1562, p. 21.
는 부써로 하여금 헛되고 공허하며 죽은 믿음에 관하여 말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백성 속에 거하신다. 칭의에 대한 이러한 개념에서 우리는 부써 신학의 중심에 서게 된다. 신적인 삶이 우리에게 나누어 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우리 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며, 그 분 자신을 살아 계신 분으로 우리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 진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선택하셨다. 성령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실현시키신다.
이제, 이러한 문제의 본질과 관련해서 볼때, 여기서도 또한 칼빈이 부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써는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될 때마다 반복해서 논점이 단어들에 놓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자리에서는 결코 단어논쟁 (logomachia, 여기서는 ‘말장난’의 의미: 역자주)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이 점에서 개념들을 서로 대립시킨다면, 그것은 단어논쟁으로 보일 수 있다. 칼빈이 성경의 용어들에 대한 구분에 있어서 보다 세심하다는 것은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칭의의 법정적 성격이 퇴색되지 않토록 보다 신중을 기했다. 우리는 이신칭의가 비실제적인 방법으로 의가 된다는 그의 공식을 알고 있다. “그러나 참된 의의 결핍 때문에 거룩한 닻에로 피신하는 것처럼 피난처로 대피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필수적이다.” CO, 40, p. 438.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부써의 개념을 고수했다. 그러나 즉 이러한 무공로의 칭의를 다룬 부분에서 칼빈은 부써 보다 더 강하게, 칭의를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말미암는 은혜로운 받아들이심으로 고수했다. 우리는 칭의에 대한 칼빈의 설교 (CO, 51, pp. 683-740)를 그의 「기독교 강요」 (CO, 30, pp. 553-579)와 비교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지키신다. 그러나 우리가 자세히 살펴본다면, 칼빈에게 있어서 부써의 개념과 다른 차이점은 전혀 없다. 첫째로, 부써가 얼마만큼 원천이 되었는지는 회개와 회심에 관해 이야기되는 구절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OS, 4, p. 58; 59, 76, 78 등등.
칼빈은 부써의 복음적 무가치와 율법적 무가치 간의 구분을 따른다. OS, 4, p. 58.
하나님의 은혜의 효력에 관해 두 사람 모두 동일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부써의 개념은 중심점에 있어서 칼빈과 어떤 본질적인 차이도 없다는 것은 명확하며, 우리는 또한, 저 유명한 다섯 번째 조항이 성립된 레겐스부르그 (Regensburg)에서의 그들의 연합 활동들을 볼 때, 1538년 1월자 편지에 나타난 부써의 개념들에 대한 칼빈의 판단이 바뀌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은혜와 공로에 의한, 믿음과 행위에 의한 중생의 회복과 칭의에 관하여.” (De restitutione regenerationis et iustificatione nominis gratia et merito, fide et operibus) T. Stadtland, pp. 79-82.
칼빈은 이러한 공식에 관해, 종교개혁의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일치하는 것은 너무 많다. CO, 10b, p. 215, 파렐 (Farel)에게 보낸 1541년 5월 11일자 편지.
칼빈이 그렇게 오판했는가? 아니면, 그가 부써의 입장을 심한 편견으로 대했는가?
우리가 칼빈의 그와 같은 언급에 대해 그렇게 심하게 놀라지 않는 것은 특히, 그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부써에게 있어서도 칭의와 성화의 사이에 놓인 관계의 비밀이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그리스도 한 분과의 실제적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써가 이중칭의 (iustificatio duplex)를 논하는 곳에서 칼빈은 우리 속에 이중적인 방법으로 (dupliciter) 거하시는 그리스도에 관해 논하는데, CO, 50, p. 199.
그것은 중생 (regeneratio)이라는 방법과 의에 대한 무상의 수용 (acceptatio gratuita justitiae)이라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는 사돌렛 (Sadoletus)에게 보낸 편지에서와 「기독교 강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계시 곳에 성화의 성령께서 계신다. 이 성화의 성령 없이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받아들일 수 없다. OS, 1, p. 470: “그러므로 우리가 공짜로 선언하는 믿음의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성화의 성령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께서 계신다.” (Ubi ergo cunque ista quam gratuitam praedicamus fidei iustitia est, illic est Christus. Ubi Christus, illic Spiritus sanctificationis...)
혹은: 그리스도께서 조각조각 찢겨지실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동시에 얻은 의와 거룩이라는 이 두 가지 역시 분리될 수 없다. (「기독교 강요」, III, 11, 6.) OS, 4, p. 187.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와, 우리와 그 분과의 실제적인 교제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부써와 칼빈은 하나이다. 그들은 실제로 십자가의 신학 (theologia crucis)을 가진 루터의 가장 깊은 의도를 이해했는가? 사람들은 정당하게 그들의 신학을 영광의 신학 (theologia gloriae)이라고 특징지울 수 있는가? 부써는 루터와의 그와 같은 차이를 의식하지 못했다. 칼빈 역시 이 점에서 루터와 관련시켜 볼 때 결코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차이점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는 있었다. 우리는 그런 차이의 핵심을 성령의 개념과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개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칼빈은 루터의 생도였다. 아마도 가장 신실한 생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루터와 갈라선 이 점에서 부써의 발자취를 따랐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면에서 부써 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칼빈주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에 대해 부써에게 감사를 돌려야 한다. W. Pauck, The Heritage of the Reformation, p. 99.
반대로 부써 역시 자신의 본질적인 생각들을 한 형식으로 소화해낸 칼빈에게 감사를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부써 자신은 결코 그와 같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호 간의 영향을 이와 같이 우리는 그들의 관계로 부를 수 있다. 그러한 관계가 있었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들의 신학의 핵심을 서로 완전히 이해했다는 사실의 결과였다.










*참고도서

1. 일차자료

1-1. 칼빈 작품:
J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59, (ed.) G. Baum & E. Cunitz & E. Reuss, Braunschweig 1884-1900. = CO (이것은 책 제목과 같이 칼빈작품전집으로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라틴어판과 서신들, 주석, 설교들이 실려 있다. 하지만, 칼빈의 모든 작품이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때로 CR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이것는 이 칼빈작품이 Corpus Reformatorum이라는 전집 29권부터 80권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작품전집 1권은 CO 1로 표기되거나 CR 29로 표기되기도 한다.)
Joannis Calvini Opera Selecta, (ed.) P. Barth & G. Niesel, München 1926-1936. = OS (이것은 책 제목과 같이 칼빈의 작품 가운데 선별해서 실었다. 「기독교 강요」 1판 (1536)과 최종판 (1559)이 편집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나머지는 소논문들과 서신들 그리고 신앙고백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2. 부써의 작품:

Enarrationum in evangelia Matthaei, Marci, Lucae, Liber I-II, 1527. (공관복음 주석)
Enarrationes perpetuae in sacra quattuor evangelia, 1530. (복음서 주석, 1530년판)
In sacra quatuor evangelia, Ennarationes perpetuae, 1536. (복음서 주석 1536년판)
Psalmorum libri quinque ad Hebraicam veritatem traducti, (ed.) Oliva Roberti Stephani 1554. (시편 주석)
Praelectiones doctiss. in Epistolam D. Pauli ad Ephesios, 1562. (에베소서 강해)
Metaphrasis et Enarratio in Ep. D. Pauli ad Romanos, Basileae 1567. (로마서 주석)
Martini Buceri Scripta Anglicana fere omnia, 1577. = Scripta Anglicana. (부써의 영국 작품 모음집)
Martini Buceri Opera Latina, I (ed. C. Augustijn & P. Fraenkel & M. Lienhard, Leiden 1982)/ XV (ed. F. Wendel, Paris/Gütersloh 1954)

2. 이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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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Anrich, Strassburg und die calvinische Kirchenverfassung, Tübingen 1928.
H.M. Barnikol, Bucers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박사학위논문), Göttingen 1961.
E. Bizer, Studien zur Geschichte des Abendmahlsstreits im 16. Jahrhundert, Gütersloh 1940.
J.W. van den Bosch, De ontwikkeling van Bucer's praedestinatiegedachten vóór het optreden van Calvijn, Harderwijk 1922.
A.E. Burckhardt, Das Geistproblem bei Ulrich Zwingli, Bazel 1932.
J. Courvoisier, La Notion d'église chez Bucer dans son développement historique, Paris 1933.
J. Courvoisier, “Le sens de la discipline ecclésianstique dans la Genève de Calvin,” in: Hommage à Karl Barth, Neuchatel/Paris 1946.
J. Courvoisier, “Bucer et l'oevre de Calvin,” in: Rev. de Théol. et de Phil., T. XXI, 1933, N.S., p. 66-77.
J. Courvoisier, “Bucer et Calvin,” in: Calvin à Strasbourg (Quatre Etudes, Strasbourg 1938).
H. Eells, “Martin Bucer and the Conversion of John Calvin,” in: The Prinston Theological Review, 22 (1924), p. 402-419.
J. Courvoisier, Une traduction française du commentaire de Bucer sur l'évangeli selon Saint Mattieu, Paris 1933.
A. Ganoczy, Le jeune Calvin, Genèse et évolution de sa vocation réformatrice, Wiesbaden 1966, p. 166-178.
K. Koch, Studium Pietatis. Martin Bucer als Ethiker, Neukirchen 1962.
J. Koopmans, Het oudkerkelijk dogma in de Reformatie bepalldelijk bij Calvijn, Wageningen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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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Leijssen, Martin Bucer en Thomas van Aquino. De invloed van Thomas op het denkpatroon van Bucer in de Commentaar op de Romeinenbrief (1536), I, II (박사학위논문), Leuven 1978.
L. Leijssen, Martin Bucer und Thomas van Aquin, Sylloge Excerptorum, Vol. 11, nr. 4, Leuven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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