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칼빈의 제네바시 개혁과 성시화운동
정재호
http://www.j-family.org/songci/kalbin.htm
요한 칼빈의 제네바시 개혁과 성시화운동
정재호 (늘사랑 교회)
머리말
본 소고는 제네바시를 변화시킨 개혁자로서의 요한 칼빈의 모습과 그를 사회개혁으로 이끌어낸 제 요소들을 고찰하고, 성시화운동의 타당성을 종교개혁의 전통에서 조명하여 보편적·총체적인 도시선교모델로서의 성시화운동의 의의와 원리를 살펴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는 칼빈을 정점으로한 종교개혁이 서구역사에 미친 중요한 영향력에 대해서 수없이 듣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칼빈이 그 후계자들에게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 평가할 때면 너무나도 단순하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칼빈이 살았던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지금까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혁명적 성격과 그 영향을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며 쓴 헌사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칼빈은 개혁 교리가 많은 소요와 폭동과 논쟁이 따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다. 물론 이 진술은 비난에 대한 반박일 뿐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칼빈의 가르침이 그 당시 사람들과 사회에 가져다 준 획기적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칼빈이 순수하게 기독교적인 교리들을 위해 논쟁하였고, 투쟁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충분하게 강조되어 온 내용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칼빈은 세속적인 관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여러가지 문제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칼빈의 이러한 입장과 관점을 살펴보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쉽지 않은 주제들을 다루어야 하는데 그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본 소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 이상의 중요성과 방대한 언급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주제들을 구체적이고 깊게 탐구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러한 입장들의 상호연관관계 속에서 칼빈을 사회개혁자로서 살게 만든 분명한 관점들을 이해하여 보편적·총체적인 도시선교모델로서 성시화운동의 현대적 의미와 원리들을 살펴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이 소고의 목적은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소고에서는 크게 7가지의 주제에 대해 고찰하려고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 1. 인간 사회에 대한 칼빈의 이해 2. 교회에 대한 칼빈의 이해 3. 국가에 대한 칼빈의 이해 4. 칼빈의 개혁 원리의 실천 5. 칼빈의 제네바와 성시화운동 6. 칼빈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 7. 칼빈의 성시화 운동이 현재에 주는 의미
7가지 주제의 내용과 의미를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인간 사회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서는 칼빈이 보는 인간의 범주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것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2. 교회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서는 칼빈이 중요시 여긴 것은 유형교회의 경건의 훈련이라는 것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3. 국가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서는 칼빈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4. 칼빈의 개혁 원리의 실천에서는 제네바에서 칼빈이 어떻게 세가지 입장이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는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5. 칼빈의 제네바 개혁에 비추어 성시화운동의 타당성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6. 칼빈과 우리시대를 비교해 봄으로써 올바른 성시화 운동의 방향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7. 칼빈의 사회개혁 원리가 성시화 운동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시각에 본다면 칼빈이 살았던 시대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았던 여러 시대중에 한 시대에 불과하다. 그는 시대의 한 시점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상황은 그의 전·후시대와 달랐고, 또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도 다르다. 그러나 그 시대의 문제와 싸웠던 그의 소중한 고민들은 오늘날 우리시대가 해결해야 하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 하나의 답변을 줄 수 있다. 칼빈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경건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삶의 국면에서 실천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거룩한 도시를 향한 그의 강렬한 외침에서 미완성의 과업인 성시화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받는다.
1. 인간 사회에 대한 칼빈의 이해
칼빈이 인간을 이해할 때 고립된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사회속에서 영향을 주고 사는 개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보다 뚜렷한 증거는 그가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게 된다. 칼빈에게 있어서 한 인간의 범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칼빈은 신명기 20:16-20절의 설교에서 인간 범죄의 연대적인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곡물창고에다 밀을 썩혀둠으로써 해충이 그것을 먹게 하다가 밀이 부족할 때 내다 팔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그들은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을 굶겨 죽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밀이 수집된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가난한 사람들이 양육받을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게 그의 은총과 은혜를 쏟아 부어 주셨는가. 그러나 투기꾼은 기근의 울부짖음이 들리고 가능한 다른 방도가 전혀 없을 때까지 곡물 창고에 밀을 모아서 안전하게 꼭꼭 자물쇠를 채우고 저장해둘 것이다. 그러면 이제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그것은 손상되고 썩게 될 것이다. 많은 이익을 얻기 원하는 자들이 정말 우리의 주님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 이런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시는 그의 은사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항해 싸우기라도 하는 양 하나님의 은총을 묻어버리고 있다."
한 개인의 탐욕은 그 한 사람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며, 나아가서는 인간 사회의 질서와 결속을 무너뜨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구속의 원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개인의 탐욕이 사회 전체에게 미치듯이 또한 한 개인의 구속의 역사 또한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서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러한 칼빈의 이해는 사회가 어떻게 회복되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그러지고 거의 말살된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로 각 개인 안에 회복되어진다.
칼빈의 관심은 각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새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칼빈이 인간 사회에 관하여 생각할 때 가졌던 이러한 방향의 관점은 사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기본적인 일반은총에 대한 이해로 말미암아 더욱 견고한 토대를 가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타락으로 인해 우리의 본성은 전적으로 파멸되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특히 예리한 두뇌가 있으며 어떤 사람은 판단력이 월등하다. 또 어떤 사람은 기술을 배우면 곧 깨닫는 총명이 있다. 이런 차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은총을 보여 주시며, 하나님의 순전한 자비심에서 흘러 들어온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게 하신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수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인간의 공통한 본성에 하나님께서 특수한 은총을 나타내시려는 것이 아닌가? …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는 형적을 보며, 이 형적이 인류 전체와 다른 피조물들을 구별한다."
인간사회에 대한 이러한 칼빈의 기본적인 이해는 칼빈이 사회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하였다. 인간 사회는 각 개인과 분리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로 결속된 인간의 모임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 사회에서 떠나 사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 사회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역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신자나 불신자를 떠나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이웃이 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2. 교회에 대한 칼빈의 이해
앞에서는 인간 사회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교회에 대한 칼빈의 입장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특별히 교회에 대한 부분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취급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었던 것이 바로 교회의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칼빈의 이해의 풍부함을 보기 위해서 간결하게나마 하나님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칼빈이 어떤 부분에서 교회를 모든 것의 핵심에 놓으면서도 교회를 넘어설 수 있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1)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
하나님 나라는 성경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모든 계시를 포괄하는 하나의 주제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무엇을 전하려고 했는가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신약학자들은 예수가 전하려 한 메시지가 하나님나라였다는 데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똑같은 메시지가 12제자들에게(마10:7), 그리고 후기에는 70인 제자들에게 맡겨졌다(눅10:9,11). 그러나 이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더불어 이 지상에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완전히 성취될 종말론적 완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성취에 대한 긴장은 이 세대와 오는 세대 간에 여전히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한쪽 면만 치중하게 되면 성경해석을 바로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하나님나라의 통일성이다. 성경은 현재 실현된 하나님 나라와 앞으로 실현될 하나님 나라 즉, 두 개의 서로 다른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면과 미래면을 가진 하나의 하나님 나라를 가르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은 칼빈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칼빈이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이 세대에 드러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 대한 주목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입장이 본 소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칼빈과 그의 제네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고찰하는데 배경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구원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영적인 삶이고 그 삶에는 현재와 미래에 걸쳐 이어지는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나라를 명백한 문장으로 두 곳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린다.
"그가(예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했을 때에, 하나님 나라란 것은 죄의 용서와 구원과 생명과 그밖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정의는 전에 있었지만, 여기서 간단히 반복하겠다. 사람들이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과 지상 생활을 경멸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로 약속하며 하늘 생명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두 부분이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항거하는 모든 육의 정욕을 그의 영의 힘으로 바로잡으신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그의 법도에 맞도록 인도하신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정의는 다분히 한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축복과 삶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 계속되어지는 하나님의 통치의 양식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중요한 점은 바로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교회가 이해되어진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칼빈의 말은 이러한 사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요약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만으로 지배하시므로, 그리스도의 홀, 즉 그의 지극히 거룩한 말씀과는 별개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존재하듯이 상상하는 것은 거짓말이란 것을 어느 누가 분명히 깨닫지 못할 것인가?"
칼빈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명백하게 구별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어느까지가 하나님의 통치이고, 어느까지가 교회의 영역인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올바른 통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혹은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통치와 거짓된 통치를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통치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영적 축복과 삶을 한 개인에게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사람들의 모임으로 확대하는 전망 속에서 교회를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그가 하나님의 통치와 교회를 말할 때 보이지 않는 영역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영역 속에 이루어지는 신앙의 삶과 영적 축복들을 포함하여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칼빈의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에 의해서 오류 없는 참된 교회만을 연상하게 됨으로써 종종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추상적인 관념 속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완전한 교회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장소로서 보이는 교회를 강조한다.
"우리는 성경에는 두 가지 교회가 있다고 말했다. 성경에서 교회라고 하는 말은 어떤 때에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 이런 의미의 교회는 현재 지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 뿐만 아니라 천지 창조 이후 지금까지 선택받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그러나 교회라는 이름은 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한다고 고백하는 세계 각지에 산재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때가 많다 … 이런 교회 안에는 이름과 외형만 있고 그리스도는 전연 없는 위선자들이 많이 섞여 있다. 야심과 탐욕과 시기가 가득한 사람들 또 중상하는 사람들이 심히 많고 아주 불결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얼마간 있다 … 그러므로 앞서 말한 교회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눈에만 보인다고 믿어야 한다. 그와같이 우리는 나중 말한 것, 즉 사람들과 관련한 교회를 중히 여기며 그 교회와의 교통을 계속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칼빈의 교회에 대한 현실적인 입장을 보게 된다. 완전한 교회에 대한 고백은 가견적(可見的)인 지상교회를 중히 여기는 것으로 칼빈은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적 축복과 삶이 가견적인 교회를 통해서 드러나고 실현되어야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가견적 교회에 대한 칼빈의 강조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한 설명 속에서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신경의 이 조항은 또한 어느 정도 외면적인 교회에 적용된다. … 따라서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고 첨가하였다. 고대인들은 대개 이 귀절을 빼놓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데, 그 구절은 교회가 어떤 것인가를 잘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무엇이든 서로 나눈다는 원칙하에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소집되었다고 하는 것이 이 구절의 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은혜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가지로 상이하게 분배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시민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 시민 사회에서는 각 사람의 사유재산이 허락되는데, 이는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재산 소유권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가 기록한 바와 같이(행4:32) 신경은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된 공동체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은 바울이 에베소 신자들을 향해서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4:4)고 했을 때 염두에 두었던 바로 그 공동체이다."
칼빈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순수히 믿는 모든 사람만의 영적 축복 상태이고, 교회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이루는 실재적이고 가시적인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교회를 중히 여기며 교회안에 참다운 하나님 나라의 영적 통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2) 하나님 나라와 일반 은총에 대한 이해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교회만이 하나님 나라의 단 유일한 표현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단 하나의 유일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내향적 교회성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단 유일한 표현이 아니라고 한다면 교회의 내향적 경향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할 것이다. 교회의 내향적 경향에 대하여 탈출하려고 했던 사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손 꼽을 수 있다. 물론 칼빈 자신은 카이퍼에 의해서 제시된 영역-주권(sphere-sovereignty), 즉 삶에 있어서의 주권의 이론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와 가정, 국가, 학문, 예술의 영역에서의 활동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부르심에 응해야 하며 그의 주권적 의지는 모든 것을 포함할 것이며 그의 섭리는 인간 경험의 모든 세목까지 확대된다고 하여 카이퍼의 영역주권 사상에 대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카이퍼는 영역에 대한 주권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조건하에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칼빈주의적 의미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가정이나 사업이나 학문이나 예술 등을 모두 다 사회적인 영역으로 보고, 그 영역들이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의 주권으로부터 삶의 법칙을 받지도 않고, 오직 자기들의 영역 속에 있는 높은 권위에 복종한다. 국가의 주권과 마찬가지로 그 높은 권위는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한다. 이 점은 국가와 사회를 대치시킨다. 그러나 다음의 조건하에서만 그러하다. 이 사회를 하나의 집합체로 보지 않고 여러 유기적인 부분들로 나뉘어져 각 부분들마다 나름으로 관련된 독립적 성격을 존중히 여기는 것으로 본다는 조건하에서 그러하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카이퍼가 영역주권을 주장함으로써 삶의 영역들을 세분하여 독립시켰다는 것이고, 또한 모든 영역들이 순종해야 할 가장 높은 권위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듯이 이것은 유기적인 관계하에 있다 이러한 카이퍼의 주장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대한 설명 속에서 발전하였다. 인간과 사회는 죄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으나 일반은총에 의해서 여전히 죄의 효력은 저지되고 있고, 타락한 인류 속에도 선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상의 교회가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개념은 위와같은 일반은총을 강조하므로 교회도 과학, 예술, 철학 등과 같은 모든 문화적 영역의 하나로 본다. 이것은 칼빈이 하나님 나라의 실현체로서 교회를 분명하게 제시한 것과는 달리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교회안에만 제한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에게서 나타나는 강조점의 차이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한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은 모든 혜택과 유익을 자신이 소속한 나라로부터 받지만 그는 여전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일하고 즐길 수 있는 것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공급받지만 그는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일하고 즐기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각 나라에 대사관이 있어서 도움을 받듯이 일반 은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과 분리됨이 없이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데 도구로 사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제한적이면서도 자유롭다. 성령은 참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안에서 온갖 은사를 허락하신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 부어진 성령은 참된 한 사람의 인격안에서 그가 일하는 일터의 모든 삶 속에서 일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한 개인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해바라기처럼 교회안으로 집중하지만 또한 밖으로 내뿜어지는 분수처럼 세상의 모든 영역을 향하여 분출되어진다. 이것은 칼빈이 성령의 역사를 구원론과 교회론의 틀안에서만 다루지 않고, 창조적, 세계사적 지평에서 다루었다는 주장에 의해서 더욱 확증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카이퍼가 발전시킨 영역-주권개념은 영적 통치권과 문화대명령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위임된 의무라는 것을 인정하는 칼빈의 고백이 한 개인의 삶속에 용해되어지는 삶의 원리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칼빈의 교회개혁과 사회변혁이 적극적일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하나님 나라를 교회와 동일시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백성들 즉 가견적인 교회안에서의 삶 속에서 찾는 것이고, 둘째, 일반은총과 문화 대명령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영역에서 살아 계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칼빈이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에서 이것을 잘 볼 수 있게 된다.
"이 일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의 은밀한 감동을 통해서 그의 말씀의 역사를 나타내시고, 그 말씀이 마땅히 받을 높은 영예를 받게 되는 때이다. 그 후에 우리는 불경건한 자들 곧 하나님의 권위를 미친듯이 한사코 거역하는 자들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를 굴복시킴으로써 나라를 세우신다. 그러나 방법은 여러가지이니 즉 방자한 자들을 길들이시며, 길들일 수 없는 자들은 그 교만을 꺾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계 각지로부터 자기 앞으로 모으시도록, 교회와 교인의 수효를 늘이시도록, 교회 사이에 바른 질서를 확립하도록, 그러나 순수한 교리와 경건의 원수들을 모두 타도하시도록, 그들의 계획과 노력을 분쇄하시도록-이런 일들을 매일 기원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대한 입장으로 인해서 칼빈은 사회에 대한 전 영역으로 그의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된다.
3. 국가에 대한 칼빈의 이해
칼빈에게 있어서 국가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그는 국가 질서가 영원히 지속되거나 태초부터 있어 왔다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칼빈은 국가 통치의 기원으로 타락을 그 원인으로 찾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칼빈은 국가 기원의 결정적인 원인을 부차원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돌리고 있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통치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
"지상의 모든 일에 대한 권위가 왕들과 다른 권력자들의 수중에 있다는 것은 인간성의 패악성 때문에 생긴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거룩한 명령에서 유래한 일이라는 뜻이다."
칼빈의 국가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국가의 기능을 절대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국가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칼빈은 국가가 제정된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사를 처리하기를 기뻐하시며, 사람들과 함께 계심으로써 그들이 법을 제정하며 재판소에서 공의를 실시하는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통치를 그 성질상 부패한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함부로 날뛰기를 좋아하는 광신자들은 이런 생각을 외친다 … 그러나 국가 통치에 지정된 목적은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외적인 예배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수호하며, 우리를 사회 생활에 적응시키며, 우리의 행위를 사회 정의와 일치하도록 인도하며, 우리가 서로 화해하게 하며, 전반적인 평화와 평온을 증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이러한 국가통치의 한계성과 함께 국가통치를 부정하는 견해를 강도 높게 비난한다.
"현재 우리 사이에 있는 하나님 나라가 현세 생활을 일소한다면, 나는 이 모든 일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조국을 갈구하는 한편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생활에는 이런 보조 수단들이 필요하다면, 사람에게서 이러한 것들을 빼앗는 사람들은 바로 그에게서 인간성을 빼앗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논적들은 하나님 교회는 완전해야 하며 교회의 통치만 있으면 다른 법률을 대신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사회에서 결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완전성에 대해서 미련한 공상을 한다. 극도로 엄격한 법으로도 억제할 수 없는 그렇게까지 완강하고 거만한 악인들이 만일 어떤 악한 짓을 해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짓을 할까? 악행을 억제하는 권력이 전혀 없을 경우 그런 악인들은 어떤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칼빈의 입장은 국가의 존재나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기 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이해하였다. 정치권력은 기독교인들이 금기시해야 할 어쩔 수 없이 타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선의 도모와 하나님의 계명을 이룩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것이 칼빈이 그토록 정치적 방법으로 제네바 교회와 제네바시에 영향을 주는 모든 타락한 생활을 개선코자 한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교회와 성직자를 통하여 국가와 정치의 통치 권력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칼빈은 히틀러나 스탈린 혹은 중세의 교황처럼 법위에 군림하면서 비밀경찰, 무장 경호원들이나 떠들썩한 대중의 환호를 동반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적법한 정치적 절차와 수단들을 사용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였으며, 관원들에게 의존하였다. 나바르 왕이었던 안토니에게 보낸 칼빈의 다음과 같은 편지는 이것을 잘 말해준다.
"왕과 제후들이 수행해야 할 업무의 막중함에 비례하여 그들은 그들의 수행해야 할 의무를 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정열을 바쳐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를 강력히 원하십니다 … 폐하, 그렇게도 많은 진정한 신자들의 탄식과 신음이 있음을 당신은 들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원조요청에 응할 용기를 가지셔야 할 뿐 아니라 힘닿는 한, 그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국가의회(Assembly of the States)가 다른 어떤 때보다 절호의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칼빈은 관원들의 성스러운 소명을 믿었으며, 민주정치를 인정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칼빈을 살펴볼때 그의 제네바시 개혁은 단순히 제네바를 교회화 내지 교회의 거대한 공동체화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칼빈의 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문제는 교회와 국가의 구별이 아니라 한 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정치영역 간의 구별인 것이다. 이것은 급진적인 종교개혁운동의 하나였던 재세례파들이 성급하게 넘어섰던 문제였다. 재세례파의 정치와 교회를 분리시킨 시각은 매우 탁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독특한 시대적 상황속에서 한 국가안에서 신앙과 정치영역 간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구별을 의식하지 못한데 비극이 있었다. 칼빈은 이것을 인식하였고 그는 조화를 이룩하려고 하였다.
교회의 개혁으로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방법을 통하여 제네바시를 개혁하려고 한 칼빈의 탁월한 노력은 충분하게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칼빈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정치적인 적법한 방법을 통하여 제네바시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의 놀라운 열정은 관원들을 압도하여 제네바 시에 "교회 법령"에 의한 개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4.칼빈의 개혁 원리의 실천
여기에서는 칼빈의 개혁 실천을 다음과 같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1)교회개혁 2)제네바시 개혁이다.
1)교회개혁
칼빈의 제네바 개혁운동의 첫 출발점은 교회 개혁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성격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첫번째로 행한 시도에서 뚜렷히 찾아볼 수 있다. 칼빈은 제네바 개혁의 계획을 문서형태로 만들어 시의회에 제출하였는데 이 문서는 후에 "제네바 교회의 법령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제네바 개혁운동은 참된 교회로의 복귀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 교회 법령에 의한 훈련의 목적을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회의 덕을 세우고 개인을 바르게 하며, 징계 대상자를 훈계하여 그가 죄에서 벗어나게 하며 교회가 죄를 경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요긴하다. 이를 위하여 먼저 개인적 충고로 하고 공지의 사실이나 전체적으로 징계할 필요가 있을 때는 교회 의회에 부쳐서 처분한다".
교회개혁의 기초된 제네바 법령들은 교회에서의 삶 전체를 위한 법 제정의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법령들은 주로 목회적 기능의 견지에서 작성되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질서 정연한 교회는 목사, 교사, 장로, 그리고 집사의 4가지 직분의 감독을 받는다. 교회의 임무는 복음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하며, 성도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훈련시키며, 고통당하는 자를 보살피는 것이다. 넓게 보면 비록 이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이 각각의 임무는 위의 4가지 직분의 각각에 속한다." 이 법령에는 교회예배의 실제적인 세부지침도 결정되어, 예배와 요리 문답 공부 그리고 교구의 경계선 등을 정하였다. 특히 평신도인 장로는 권징(勸徵)의 실행을 맡았다. 그 수는 12명으로 소의회에서 2명, 60인의회에서 4명, 200인의회에서 6명으로 모두가 의회에서 선출되었다. 장로들과 목사들은 권징을 책임지는 종교법원을 구성했다. 평신도가 목사보다 수적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원장은 선출된 행정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법원은 교회법원이었지 시민 법정은 아니었다. 또한 목사들은 세속재판권이 없었으며 치리법원은 정부의 권위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조항을 삽입했다.
칼빈은 이 법령에 기초하여 성도들의 도덕적 훈련을 감행하였다. 주로 장로들이 중요한 역활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생활을 살피고 규모가 없는 자들을 사랑으로 훈계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종교법원에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보고했다. 그들은 과오를 범한 자들의 교정(矯正)을 위해 형제로서의 조처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칼빈이 권징의 실시와 실행을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각했다는 실수를 범하면 안된다. 권징은 해결책의 일부에 불과했다. 칼빈의 말처럼 권징은 고후2:7에 따라 엄격함이 항상 온유함에 의해 조절되어야 만 했다. 그는 권징이 교회의 순결의 보호와 회개를 유도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엄격히 말하면 권징은 그 스스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권징은 복음의 선포와 성례의 집행을 실제적이며 개인적으로 효과있게 하려는 의도로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네바의 종교법원이 폭군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것은 부당하다.
2)제네바시 개혁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개혁과 제네바시의 개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교회의 멤버가 된다는 것과 시민이 된다는 것 사이에 아무런 구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당파들이 염두에 두고 있던 기독교 공동체는 시민공동체의 사람들과 동일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개혁의 문제는 시의회와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속적인 재판권이 없었기 때문에 의회의 승인이나 통과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칼빈의 교회개혁에 반대하는 자들은 시의회와 선거를 통해서 칼빈보다 더 많은 세력을 확보하여 교회 개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특히 방종파는 그들의 부나 지위에 관계없이 일관적으로 집행되는 권징의 굴레를 더 이상 견딜수가 없게 되자 노골적으로 칼빈을 비난하고 적대시했다. 칼빈은 때로는 위협과 절망에 사로잡히면서도 관원들이나 시민들이 올바로 세워지고 진정으로 개혁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싸웠다. 그가 제네바 시의회를 완전히 장악하기까지는 14년의 풍파많은 세월이 지나가야만 했다.
칼빈은 환경이 성격과 습관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도덕적 비행의 원천들을 일소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그 당시 제네바는 사실상 철저한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중세의 제네바는,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방탕한 쾌락의 중심지였다. 제네바의 명랑함은 종종 무절제, 외설,그리고 방종함과 관련되어 있었다. 칼빈과 당국자들은 수많은 술집과 사창굴을 제거하기 위해 강제적인 조처를 호소했다.
칼빈의 제네바시 개혁은 비단 교리적이고 신앙적인 문제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었다. 집사의 직분에서 분명하게 보여지듯이 칼빈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칼빈은 종교개혁을 지지한다고 선포했던 부유한 계층들을 결코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회중들 가운데 섞여 있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아주 일반적인 오류는 정죄받고 버림받는 고통들로 압제당하는 사람들을 수수방관하는 일이다 …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번영의 상태를 통하여 하나님의 호의에 대해 판단하기를 즐겨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들을 찬양하며, 그들이 말하듯이 운명이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보낸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비참한 사람들과 궁핍한 자들을 경멸적으로 모욕하며, 하나님이 그들을 미워하신다고 어리석게 공상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기된 자들에게 행하시는 것처럼 그들에게 아주 많은 관용을 베푸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판단하에 그들은 그렇게 처신한다. 내가 말하는 오류는 … 세상의 모든 세대들에 만연되어 있는 오류이다."
더 나아가서 그는 재산을 우상시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는 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비난을 한다.
"할 수 있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과 공동으로 소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하나의 태양조차도 독차지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할 수 있다면 그들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도록 하나님과 자연의 전체 질서도 바꾸고 말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들이 무슨 그리스도인들이란 말인가! 그래, 만일 어떤 사람이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믿기를 원한다면 그럴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칼빈 자신은 제네바로 몰려오는 난민들을 돌보기 위해서 그의 봉급과 집을 항상 난민들과 함께 써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그 밖에도 칼빈은 고리대금을 금하였고, 노동자와 주인 모두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노력하였다.
칼빈의 이러한 노력으로 말미암아 제네바는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1556년 12월에 스코틀랜드의 개혁가 존 낙스가 그의 영국 친구 안나 로크부인에게 편지를 써서 칼빈의 도시를 극찬한 내용은 이러한 개혁의 결과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감히 그리고 떳떳이 말할 수 있지만, 사도 시대 이후로 지상에 존재했던 그리스도의 학교들 가운데 가장 완벽한 곳입니다.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전파하지만 생활과 종교가 그처럼 신실하게 개혁된 곳을 나는 아직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5.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운동
1.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도시
우리는 기독교와 국가, 기독교와 사회와의 관계를 생각할때면, 종종 중세 카톨릭 교회가 취했던 암울한 터널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떨쳐버려야할 죽은 유령의 그림자이다. 잘못되었던 시대의 사상은 떨쳐버리고 마치 진흙 속에 감추어진 진주를 찾아내듯이 우리는 중세의 그 암흑의 그림자를 더듬어 진리의 실체로 다가가야만 한다. 우리는 이 실마리를 하나님의 다스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개념은 종종 신정정치라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정정치는 유형적이거나 물질 혹은 물리적인 것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보이는 형식과 조직은 중요하며 어느정도 영적이고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통치 그 자체이거나 영역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신성하시다. 피조된 모든 것은 창조주로부터 나오는 객체요 사물이지, 그것 자체가 신성시 된다거나, 무슨 신비스러운 기운이나, 숨겨진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나무일 뿐이지 어떤 목신이나 여신이 거주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정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을 마치 피조세계에 하나님만이 가지신 신성함이 머물러서 어떤 특정한 공간과 유형적인 지역이 신성한 곳으로 변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종종 우리의 오해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정정치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기독교적 국가나 개혁을 성직자에 의해서 직접통치되는 국가 통치나 개혁으로 이해하게 만들며, 더 나아가서는 교회가 한 국가의 모든 입법,행정,사법을 장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한다. 이와같은 생각의 발전은 우리에게 신정정치의 발전과 성숙을 어떠한 가시적인 지역이나 건물 등을 통해서 신정정치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도록 하는 오류에 빠지도록 인도한다. 중세 카톨릭 교회나 급진적인 재세례파는 서로 상반된 두 모습을 통해 이러한 잘못된 예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칼빈은 이러한 두 가지의 극단적인 강조를 동시에 붙잡음으로서 양자의 균형을 취하였다.
신정정치의 올바른 모습을 우리는 실패하였던 사회였지만 우리의 거울인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구약 이스라엘은 신약에서 분명히 살펴볼 수 있듯이 구약 교회였다. 그러나 이것이 구약 이스라엘은 교회의 모습만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구약 이스라엘 공동체는 포괄적인 조감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왕에 의해서 베풀어지는 합법적 통치가 있고, 제사장에 의해서 행해지는 종교적인 격식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한 국민에 의한, 한 국가 안에 왕에 의한 정치적 행위와 제사장에 의한 종교적 행위가 동시에 병존하고 있는 사회였다.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는 않았다.
출애굽기 19장을 살펴보면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늘 우리시대에 종종 교회와 국가 사이에 되어지고 있는 조심스러운 구분은 사실상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것들과 세속적인 것들은 구분지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출애굽기 19:6은 강력하게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기록함으로 이것을 표현한다. 이 묘사에 있어서 "시민적"인 단어들은 [왕국]과 [나라]이며, 반면에 "종교적인"단어들은 [제사장들]과 [거룩]이다. 결국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신정제도로서, 왕이요 제사장인 하나님에 의해서 지배되어지는 나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칼빈은 이러한 이중적 통치를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 이중의 통치 하에 있다는 것을 확립했고, 영혼 즉 속사람에 대한 그리고 영생에 관계된 통치에 대해서는 다른데서 자세히 논했으므로 여기서는 둘째 통치 ―즉 시민 생활에서의 정의와 외적인 도덕성만을 확립하는 통치―에 대해서 논하겠다."
이것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에게 두 영역 안에서의 삶이 놓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안에서의 삶이며, 교회 안에서의 삶이다. 이 두영역 안에서의 삶을 피해서 어느 한 곳에서의 삶만을 택하는 것은 바람직하거나 정상적인 삶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이스라엘의 지향점은 신정정치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결코 이방인과는 다른 신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또한 낙원과 같은 땅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그들의 사회 ―국가와 종교― 를 지배하는 원리는 신정정치였다. 성경의 이러한 교훈은 칼빈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W.J 부르마는 칼빈의 계획은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칼빈에 나타난 하나님의 다스림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시대의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칼빈의 계획은 우주의 입법자요 왕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그의 관념에 기초하는데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린다는 것은 그에게 극히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는 전 세계의 소유권을 상속받으셨다. 특별히 복음의 선포와 더불어 그의 왕국은 세상의 한 끝으로부터 다른 끝으로 확장되었다 …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에서 그의 통치 아래 살도록 전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셨다. 이것은 종교개혁은 또한 세속적 영역의 개혁을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칼빈은 경고하기를, 우리는 불신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죄악들을 슬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종교 안에 조화와 통일이 있을때까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 의해 순수하게 경배받을 때까지, 그리고 모든 세상이 개혁될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 안에 유지시키는 의로움을 통하여 참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의 사회를 신정정치 혹은 신성한 도시라고 부르게 만드는 것인가? 신정정치라는 개념을 하나님의 원리에 의한 다스림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 아래서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관계에서 이것은 정의되며 말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차적으로 유형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인격적인 그래서 마치 모든 식물이 태양에 의해 빛과 열을 받아 자라나지만 그 둘 사이에 연결되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점선과도 같이 하나님에 의한 다스림도 무형적이고 내면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런 유형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올바르게 순종해 드리는 것은 "신정"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시이다.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는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내면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3의 소산을 배출한다. 하나의 식물이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듯이 이 소산은 유형적이며 물리적이고 제한적인 공간 속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다스림이나 통치를 이야기할때 우리는 이것을 빼놓을 수 없다.
신정정치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간에 이루어지는 개인적, 내면적인 관계와 제3의 소산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손으로 창조되는 땅의 소산은 신정을 나타내주는 분명한 표시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말씀에 의한 다스림에 의하여 나타나야만 한다. 누가 그 사회를 통치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와 국가를 이끌며 지배하는 주요한 원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사회가 하나님에 의한 다스림이냐? 아니면 우상숭배의 사회이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에 있어서 지도자는 이것을 늘 명심해야만 했다. 여호수아나 다윗왕조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나라를 지배하는 힘,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보게 된다. 제사장이 지도자에게 말씀에 의한 통치를 강요해야 할 필연적인 책임과 직무를 맡은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원리의 근거인 말씀에 대한 극도의 강조를 보게 된다. 왕과 제사장이 구별되어 있으면서도 왕과 제사장의 분리가 없는 참다운 신정정치의 모델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칼빈이 살았던 16세기는 거대한 중세 카톨릭교회가 붕괴되는 전환점이었다. 이 전환의 과도기시대는 중세 교회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칼빈은 중세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난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 앞에는 지금까지 내려온 중세의 도시와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그 시대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물결의 영향에 휩쓸려 있었다. 칼빈의 교회 개혁의 성격이나 방향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두가지의 상반된 흐름의 시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칼빈의 제네바 개혁을 종종 신정정치라고 부른다. 이 단어에는 칼빈의 제네바 개혁에 대해서 음울한 암흑의 중세통치와 동일시하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칼빈의 제네바 개혁은 중세의 신정정치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만약에 칼빈의 개혁이 중세의 신정정치라는 평가를 들어야 함에 동의해야만 한다면 다음과 같은 전제적 상황에만 동의해야 한다.
첫째, 제네바 시민들의 구성은 적어도 대부분 기독교를 각 개인의 신앙으로 받아들인 기독교인들로 이루졌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유럽의 상황은 교회의 멤버라는 것과 도시의 시민권을 가진 멤버라는 것 사이에 아무 구별이 없었다.
둘째, 칼빈은 중세 신학자들이 가졌던 국가와 교회의 통합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교회와 국가에 대한 이러한 사상은 중세교회와 사회의 붕괴로 말미암아 더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민족이나 작은 나라, 심지어 도시국가를 통해 계속 유지되었다. 그리고 칼빈은 이 사상을 새로운 방법으로 계승하였다.
칼빈의 교회 개혁에 의한 제네바 개혁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당시의 환경과 사상적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 세속의 관원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대해 책임을 지며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효과적으로 이루어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의미에서는 분명히 신정정치적 성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칼빈의 교회 개혁에 의한 제네바 개혁이 중세의 신정정치가 아니라는 것을 한마디로 일축해 버릴 수가 있는 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분명한 사실에 의해서이다. 제네바 시의 정치는 적어도 성직자 정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2. 말씀이 다스리는 도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계명은 교회에서만 선포되고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갖게 하는 중요한 근거는 구약의 십계명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십계명은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주어졌고 이것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한 지침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이방인들은 여전히 방탕한 죄악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받아드리지도 그 거룩한 말씀을 실천할 수도 없는 철저하게 무기력하고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은 이방인들에게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성경에서 발견한 위대한 진리이다. 또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매일 매일 검증되고 확증되는 삶의 진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주로서의 주권에서 그분의 말씀에 대한 탁월한 위치와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거룩한 백성에 대한 계명에서부터가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온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그분의 위대한 권위에서 부터 말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그의 율법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교회에만 적용되는 규칙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계명을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영광중에 임재하셔서 시내산에서 주셨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를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온 만물을 위해서이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을 말하고 있다.
"율법의 둘째 기능은 적어도 벌을 받으리라는 공포심을 일으켜 일부 사람들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에 있는 무서운 위협을 듣고 강압을 느끼지 않으면 바르고 공정한 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 이 억제된 또 강요된 의는 인간 사회를 위하여 필요하다. 주께서는 만사가 소란·혼란하지 않고 사회가 평온하도록 이런 방법을 마련하셨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일을 허락한다면 사회는 소란하고 혼돈하게 될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부르심을 받기 전에, 또 성결의 영을 받기 전에, 어리석은 육의 욕심대로 날뛰는 동안은, 이런 감독을 받는 것이 유익하다. 천벌이 무서워서 적어도 외면에 나타나는 난동을 삼가는 동안은 그들의 마음이 아직 길들여지지 않고 전진도 적지만, 의의 멍에를 멤으로써 조금은 야성이 꺾인다. 그 결과로, 부르심을 받을 때에는 전연 규율에대한 초보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도의 다음과 같은 교훈은 특히 율법의 이 기능에 대해 언급한 듯하다.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딤전1:9-10)-"
그러므로 하나님은 동일한 계명과 말씀으로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을 정죄하시고 심판하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교회와 이방인들에게 서로 다른 계명과 말씀과 삶의 원리를 가지고 계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교회속에서 하나님의 오류 없으신 완전한 계시와 영광을 볼 수 있겠는가? 예를 들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는 말씀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동일하게 이방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다는 강력한 주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방인들은 구원의 소식과 거룩한 계명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또한 그분의 동일한 말씀으로 그들은 정죄와 심판을 당하는 것이다.
타락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과 지각이라고 하는 선물을 받았으며,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을 인간이 창조된 방식에 개략적으로 상응하는 윤리의 이론적 근거를 개발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능력이 있다. 이방인들은 의식적으로 신적계시라는 권위를 그 원칙들에 부여하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 원칙들은 3중의 권위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타고난 도덕성, 삶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 유일하게 지혜로운 자로 인정받아 온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바를 따르려는 자신의 경향을 발견하는 것 등이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간에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말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세속사회가 지켜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과 인류를 위하여 필요한 기본 원리들에 대한 강력한 적용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장수하기 위해 우리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출20:12) 우리는 음행을 피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6:18) 우리는 사회 구조 때문에 도적질이나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엡4:25,28) 다시 말하면 십계명 중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6계명과 그밖의 특정한 일반 원리들은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사회가 질서를 가지고 유지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인 것이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가 조직에서 집권자 다음가는 것은 법률이다. 법률은 국가의 가장 튼튼한 힘줄이며 … 따라서 법은 무언의 집권자요 집권자는 살아있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옳은 말이다."
칼빈의 이러한 고백은 타락한 사회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법률이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개혁하고자 하는 주장이 이방인들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을 발견할 때 더욱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전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은 현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갖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음행과 거짓말이 사회에 돌이킬수 없는 상처를 주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입법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칼빈의 다음의 고백은 이러한 사실을 함축적으로 암시해 주고 있다.
"우리가 도덕적 율법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율법은 자연 법칙의 증거에 불과하며 또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새기신 양심의 증거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공정성의 개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덕적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공정성만이 모든 법의 목표와 표준과 한계가 되어야 한다. 그 표준에 따라서 구성되며 그 목표를 향하며 그 한계를 지키는 법이라면, 그런 법이 유대인들의 법이나 우리의 법과 다르더라도 우리는 배척할 이유가 없다 … 더 나아가서 이 다양성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회의 안녕과 질서에 대해서 심한 악의와 증오심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이와 같은 칼빈의 법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단계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입법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1)기본적 도덕률이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며, 체험과 또 적절한 곳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논증을 벌여 그것을 강화하는 것,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면 우리와 우리 사회가 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2)이러한 도덕률이 가능한 한 충분히 법률과 관습에 구현되도록 하는 것, 심지어 소수파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알려졌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일을 막아야 하며,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그것의 시행을 위해 처벌을 제도화해야 한다.
3)사람들에게 이 창조주의 율법을 경멸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견해, 또는 일시적 상상도, 또 단순히 사회적 관례의 문제도 아니며, 기본적으로 사랑이 많으신 우리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께서 우리를 지으신 방식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즉 죄-을 알게 하는 것이다.
6. 칼빈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
몬터(Monter)는 "제네바 역사에서 모든 길은 결국 칼빈으로 통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칼빈의 지도하에 있었던 제네바는 그리 자비로운 국가는 못되었다. 칼빈 자신은 제네바 사회의 어떤 사람들 보다도 범죄자에 대하여 더 가혹한 편이었다. 칼빈의 종교적 확신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제한된 시대를 살았던 칼빈의 시대를 이해해야만 한다.
1) 16세기 제네바의 시민들
제네바가 칼빈의 개혁을 받아들였을 때, 제네바 총회는 "하나님의 복음과 거룩한 복음의 법 안에서 살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약속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칼빈은 요시아와 아사의 치하에 있는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진 계약을 회상하고는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모든 시민이 하기를" 군주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거부하는 사람은 신앙고백으로 형성된 크리스챤 공동체로부터 제거되어야만 한다. 칼빈이 군주들에게 이러한 요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시민의 자격과 교회에서의 교인 자격이 동등하게 취급되었던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의 이상이 곧 제네바의 이상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교회와 국가를 동일시 했기 때문이 아니다. 교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세속권력과 오랜 투쟁은 칼빈이 교회와 국가를 분명하게 구별짓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가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신적 기원과 목적을 가지며, 하나님의 영광의 수호자로서 공중 도덕과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이었으므로 교회를 전 삶에 관계된 것으로 보았다. 참된 교회의 표지를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들로만 본 루터와는 달리 참된 교회의 제3의 표지로 구속되는 공동체 안에서의 신실한 징계를 덧붙인 칼빈은 신실한 징계의 모든 사회에 적용했던 것이다. 이것이 칼빈의 제네바 신정정치(theocracy)가 가지는 의미이다.
칼빈의 시대와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그 중요한 점의 하나는 오늘날 사회는 기독교인들만으로 시민이 구성될 수 없다는 점이다. 시민의 자격은 기독교인의 특권이 아니며, 다양한 종교와 신념 그리고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구속되는 공동체 안에서의 신실한 징계를 전 사회구성원들에게 확대하여 적용할 수 없다.
2) 공동체적인 인간의 연대 의식에 대하여
두 번째의 중요한 차이점은 인간연대의식과 개인의 권리에 대한 점이다. 칼빈의 신학에서 부분적으로 재구성된 인간의 삶은 공동체를 사랑함에 그 생명이 있다고 만찬논쟁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만일 다음과 같은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고 영향을 미친다면 성례에서 많은 은혜를 입을 것이다. 형제들 중 누구도 감정을 상케 아니하며, 경멸받지 아니하며, 저주받지 아니하고 또는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에 의해 죄를 짓게 하지 아니하며, 동시에 우리가 행한 잘못에 의해 그리스도를 저주함과 경멸함과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함이 없이는 동시에 우리 형제들과 일치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루듯이 우리 형제들의 몸을 똑같이 다루어야 한다는 것(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이 다른 지체의 고통을 이내 감지하듯이 우리는 형제를 동정함으로 접촉됨이 없이도 어떤 악에 의해서도 침범 당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순수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그 몸은 비록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맺어졌을지라도 내적인 징계가 시행되어야 한다. 칼빈은 아주 작고 은밀한 죄를 위해 은밀한 훈계를, 소문난 죄를 위해 공개적인 경고를, 그리고 포악하고 파렴치한 죄를 위해서 파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의 이러한 생각은 많은 죄인들에 대한 문제가 의회에 의해 부가되어진 징계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들과 의회원들로 구성된 장로법원이 교회적인 책망을 직접하게 되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시민에 대한 징계의 권한은 의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적 책망과 세상의 검(檢)은 극도로 밀착되었던 것이다. 명예적으로 치안 판사의 의무를 갖고 있었던 칼빈에게서 우리는 이러한 그의 생각을 잘 볼 수 있다. 실제로 자주 일어난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교회에서 표현되고 있던 공동체적인 인간의 연대의식이, 제네바에서 개인의 권리가 무시된 상태에서 추구되고 지지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공공복리의 추구의 형태는 자선이었다. 그러나 종종 개인의 사생활은 방해되었고, 가혹한 행위가 증가되었는데도 교회와 시민의 일치라는 이름 하에 받아들여졌다. 제네바에서 이러한 긴장은 개인을 죽게 하고 개인에게 공포심을 조성했다.
물론 16세기 제네바에서는 이것이 가능했었고, 보편적으로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대의 정신은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사회이다. 공동체적인 시민의 연대의식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없으며, 오히려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 개 시민에 대한 책망과 징계를 교회가 감행할 수 없다.
7. 칼빈의 성시화운동이 현재에 주는 의미
현 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원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종교와 신념, 가치관을 비판할 수 없는 진리의 하나로서 권위를 부여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정신으로 칼빈이 살았던 제네바를 볼때 제네바에서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구태의연한 종교맹신자들의 독재정치만을 보게 될 것이다. 칼빈이 얼마나 관용이 없었으며, 그의 반대자들을 얼마나 강렬히, 그리고 미련하게 박해했는가를 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제네바에서 일어났던 일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마치 이것은 제네바에 숨겨있던 값진 진주는 보지 못하고 진주를 덮고 있는 황폐한 흙더미만을 보는 것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제네바 개혁에 대한 이러한 표면적 왜곡의 이해와는 상반되는 역사적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의 하나는 칼빈주의 신앙이 가장 강한 뿌리를 내리고 국민적 생활을 가장 깊게 침투시켰던 나라들―스위스, 화란, 라인강 지역의 독일, 스코틀랜드, 영국, 웨일즈― 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칼빈과 칼빈의 제네바개혁이 인간의 종교적 자유를 억누르거나 정치영역를 교회가 정복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칼빈은 교회와 국가가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교회가 국민 생활의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칼빈의 생각이 제네바 개혁의 중요한 방향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루터파 교회나 성공회와는 달리 경건의 훈련이 전체 사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를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네바에 있어서 실제로 "신정정치"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시대에 있어서조차도 전혀 생소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현대의 국가도 공익을 위태롭게 한다면 간음, 간통, 처자 불법 유기 및 여타 "종교 법원적인" 사건들을 계속해서 징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모든 사회가 유지해야 하는 통상적인 법률이 있다면 이것은 참된 경건의 훈련에 의해서도 지배받을 수 있게 교회에 의한 훈련은 국가의 정치 권력에 의해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교회에 의한 경건의 훈련을 통한 제네바 개혁에 대한 칼빈의 순수성은 다음과 같은 인종 및 종교 우월주의에 대한 생각과 사회개혁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1)인종적 종교적 우월주의는 칼빈주의의 교리와는 상반된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가난하고 멸시받는 자들 속에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본다 … 비록 그들이 완전한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갈6:9-11에 관한 설교에서). 무어인(Moor)이나 바바리아인까지도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이웃이다."
2)칼빈은 복음이 우리의 참된 지체인 이방인들이 속한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막연하게 믿지 않았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복음이 세상의 정치를 변화시키지 않으며, 세속 국가에 속한 법률을 만들지 않는다. 왕, 군주 및 행정 장관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충고를 구해야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3)칼빈의 제네바 개혁은 헌법하에서 투표와 법률에 의한 개혁이었다. 시장은 선출된 관리였으며, 시민들은 투표제도에 의해 투표하였다. 우리의 기준에 비추여 보면 법률은 엄하였으나, 그것은 엄연한 법률이었지 칙령이나 포고가 아니었다. 개인들은 그 법률하에 심한 고난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계급에 의한 차별은 없었다. 그 통치는 동등하게 모든 사람의 머리위에 떨어졌던 것이다. 이 통치는 인간사회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지하여야 할 것은 이러한 개혁은 항상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칼빈은 법률에 의한 사회의 개혁 한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의 왕이나 위정자들이 법률을 제정할 때, 그들의 방식이 하나님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즉, 그들이 그것을 제정하는 목적은 인간 개개인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떠한 침해도 받지 않게 하고, 각자의 여러가지 권리를 누리게 하고, 그리고 인간 상호 간에 화평과 협력을 도모하게 한다는 외적인 사회적 질서와 관련하여, 인간을 다스려 나가는 수단이나 방법을 강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법을 만드는 취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입법의 뜻을 거기에 한정시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 자신이 죽어 없어질 인간인 동시에, 그들의 힘으로는 사람의 숨겨진 내적 감정을 새롭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
한국 기독교는 일본 식민지 시대와 군사정권 시대를 통해서 수많은 핍박과 시련에 시달려 왔다. 권세를 잡은 자들은 불의와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폭력으로 핍박했다. 이러한 시련이 기독교에 가져다 준 가장 큰 영향은 신앙적 입장의 불일치이다. 물론 이것이 한국 기독교에만 일어난 문제는 아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지는 문제인 것이다. 세상과 문화에 대한 기독교인의 입장은 크게 세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사회는 우리가 가진 신앙의 원리로는 개선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발견한 방법으로 개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는 기독교인들이 신앙으로 살 수 없는 구조적으로 악한 곳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모든 사회와 문화로부터 분리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곳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의 원리와 말씀으로 변화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를 태도를 로버트 E. 웨버는 동일시 모델, 분리모델, 변혁모델로써 설명한다. 사회와 국가및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세가지 입장은 항상 공존하면서도 매 세대마다 한 가지 입장이 다른 입장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여 왔다. 이 세가지 입장 가운데 변혁모델은 민주화 운동이 가장 격렬하던 80년대 중,후반에 신앙 안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던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과격 운동권주의자들처럼 세상적인 원리만을 가지고 직접적인 사회적 참여를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말씀과 기도만으로 "믿습니다" 하는 것만을 올바른 태도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제3의 길이 있음을 굳게 믿었다. 때로는 기회주의자로 때로는 비정상적인 신앙인으로 의심스러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1990년 이후 민간정부가 수립된 지금에 있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군사정권으로 민주화 운동은 종식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는 물질과 향락만을 추구함으로써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가 나오는가 하면 자기들만을 아는 부자들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으로 대규모 살인계획을 세우는 지존파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할 방향은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신앙은 우리를 세상과 구별되어지라고 가르치지 세상과 분리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한 개인에게 있어서 나타나는 세상에 대한 분리적이거나 동일시하는 태도가 한 공동체 혹은 그 이상의 교회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 빛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로버트 E. 웨버는 그의 책 [기독교 문화관]에서 자신이 제시한 세가지 모델을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느 한 모델에 대한 지나친 강조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문화적 상황에서는 하나를 강조해야 할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콘스탄틴 이전 시대에 교회가 분리를 아주 강조했다는 것은 적절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의 문화는 거짓 신들에 대한 경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스탄틴 시대에는 갑자기 교회는 이전에는 자신들을 핍박하던 정부의 후원하에서 이교사회를 정화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삶의 구조와 동일시하여 공식적인 로마제국 생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동일시 모델의 결과로서 선교방식이 대결적이라기보다는 변혁적이 되었다 …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사명 문제에 이것이 던진 복합성과 함께 이 세 가지 고려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즉 그 어떤 모델도 그리스도인의 사회와의 관계를 적절히 묘사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 각 모델들은 각각 기독교적 사회적 책임의 여러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웨버의 이러한 통찰력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모델을 선택하여야만 한다. 칼빈과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운동은 오늘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사회, 교회, 국가에 대한 칼빈의 균형잡힌 이해는 자신이 속한 제네바에서 거룩한 도시를 만드는 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는 교회와 사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시키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의회와 대적자들에게 도전하고 투쟁하였다. 수많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있는 한국 기독교가 사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우리는 진지하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만 할 것이다.
지금까지 칼빈이 사회에 대한 자신의 개혁원리를 실천했던 16세기의 제네바시를 살펴보았다. 제네바시는 짧은 한 세대만에 중세의 유산이었던 영적, 도덕적 부패를 벗어버린 최고의 도시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교회와 사회를 삼켜버린 결과였다. 16세기의 제네바시는 이제 어디서고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영원한 개혁에 대한 모델로서 칼빈과 제네바시는 교회와 사회 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정재호 강도사는 합동신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늘사랑교회 담임목사로 사역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