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두 서신] 중 첫째 서신을 통해서 본 종교개혁 이념
황정욱
http://www.hanshin.ac.kr/~press/explanation/h.disser/h.disser12/18.htm
칼빈의 [두 서신] 중 첫째 서신을
통해서 본 종교 개혁 이념
황 정 욱*
≪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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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언
Ⅱ. 본문 해설
(1) 서론:칼빈 친구의 개인 상황에 대한 동정
(2) 장황한 서론에 대한 해명
(3) 고백의 의무에 대해서
(4) 교황파 종교가 지배하는 장소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
한 칼빈의 충고
(7) 또 다른 항변
(8) 다른 변명들
(9) 칼빈이 친구에게 주는 마지막 충고
(10) 죽음에 대한 명상과 결론
Ⅲ.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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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호표
CO=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Braunschweig 1863ff.
OS=Calvini opera selecta, München 1926ff.
I. 서 언
칼빈은 이 서신이 쓰여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함구하며 대신 그 출간 동기(?)를 밝힌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서신들이 몇몇 경건한 사람들 가운데서 열매를 얻었으며"에서, 또 계속하여 언급되는 "일부 내 지인들과 또 적지 않은 수의 다른 사람들"에서 이 서신들이 이미 저자의 친구들 사이에서 읽혀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자가 주장한대로 칼빈이 [두 서신]을 훼라라(Ferrara)에서 썼고 뒤쉬맹(Nicolas Duchemin)과 루쎌(Gerard Roussel)에게 보냈을까?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서신의 원래 수신자였다고 치더라도 이 두 사람은 "경건한 사람"과 동일시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집필 동기에 대한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다. 다만 집필 시기와 현재의 출간 사이에는 어느 정도 시간의 간격이 있었으리라고 추론할 따름이다.
우리는 이 서문을 읽고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서문 전체의 어조는 경고문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서신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칼빈은 이 서신을 출간할 것을 결심했을까? 답변을 하기 전에 계속 살펴 보자.
칼빈의 말 대로라면 [두 서신]은 이미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읽혀졌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경우를 그의 [Psychopannychia]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칼빈이 본문에서 요구한 "엄격하고 냉정한 조건"이 실행하기에 곤란하다고 비판한 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 독자들을 프랑스에 살고 있던 칼빈의 친구들일 것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프랑스 밖에 사는 자들, 그것도 종교개혁을 주도하는 자들 가운데 그런 생각을 품은 자들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칼빈과 이미 아는 사이였다. 그 증거를 1537년 카피토(Capito)의 한 서신을 통해 알게 된다. 이 서신은 현재 분실되었으나 화렐(Guillaume Farel)이 카피토에게 보낸 1537년 5월 5일자 답신을 통해 문제의 서신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이제 화렐의 서신을 보도록 하자:이 서신에서 화렐은 카피토가 1537년 1 월 6일에 보낸 서신을 최근에야 받았음을 먼저 밝힌다. 그 이유인즉 화렐의 적들이 그의 모든 오고 가는 서신들을 중간에 가로챘기 때문이다. 그의 적들은 누구인가? 제네바 시민들 중에는 카롤리(Caroli)처럼 화렐의 종교개혁 사업을 질시하고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화렐은 아마도 그들을 지시하는 듯하다. 여기서 화렐은 칼빈의 "서신들" (epistolae)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만일 당신의 서신이 그렇게 중대한 이유로 나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그 서신은 더 빨리 전달되었을 것이며 칼빈의 서신들은 출간되지 않았을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먼저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서신들은 탈고되었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모든 경건한 자들이 그 서신들을 질타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화렐이 이렇게 쓴 것은 아마도 카피토가 칼빈의 [두 서신]의 출판을 저지하기 위해 모종의 중대한 이유를 제기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카피토의 1월 6일자 서신이 화렐에게 뒤늦게 전달되었을 때는 이미 칼빈의 [두 서신]은 바젤에서 출판된 후였다.
우리는 카피토가 제기한 이유를 이 서신 내용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어떤 자들은 그들의 죄 안에 완전히 부패하지 않도록 특히 엄격히 경고 받아야 한다." 그들의 죄란 "자신의 오류를 고백하기는 커녕 진리를 인식한 후에도 자기들의 불경건을 하나님 경배라고 고백하며 불경건과 사소한 계명 위반을 하나님 계명의 준수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화렐이 말하는 "진리"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성서적 진리를 의미한다면 "불경건"은 성서적 진리를 인정하기는 하나 성서에 있는 계명대로 실행하기 보다는 자기 뜻대로 행하며 "종교"를 비웃는 행태이다. 여기서 종교는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Dei timor)에서 하나님을 경배(cultus Dei)하며 "주의 말씀에 복종하고"(oboedientia verbi Domini) "주의 명령"(id quod fieri praecipit Dominus)에 따라 행동함을 지시한다면 이것은 구체적으로 재발견된 성서적 진리에 입각한 신앙 자세를 뜻할 것이다. 이것을 화렐은 "경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진리를 인정하면서도 불경건의 오류를 하나님 경배로 착각하는 자들은 종교개혁 신앙을 내면적으로는 신봉하나 그 신앙대로 살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구교로 복귀하여 이전보다 더 열성적인 구교도가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신앙이 약하여 자신의 위치를 이탈할 때 이전보다 더 악하게 불경건에 굴복하였다." 어떤 자들은 처음에는 종교개혁을 열렬히 지지하였지만 결국에 가서 타락하였다. 더구나 또 다른 자들은 자신들이 오류 속에 머물면서도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처음에 가졌던 신앙을 완전히 배격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기쁘게 하려하며 하나님 계명의 위반을 일삼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저주한다. 바로 이 세 가지 부류의 개혁파들(luthériens)이 마치 전염병처럼 프랑스 내의 믿음의 형제들을 오염시키고 있다. 첫번 째와 둘 째 부류의 인간들이 이미 카톨릭으로 복귀함으로써 다른 형제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면 특히 아직 미성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프랑스의 종교개혁 운동에 위협을 주는 것은 셋째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이들이 칼빈이 1543년 [니코데모님들에게 드리는 변명](Excuse à Messieurs les Nicodémites)에서 "니코데모인"(nicodémite)라고 부른 사람들과 동일한 인물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화렐이 언급한 이 사람들은 종교개혁 신앙을 인정하면서 구교 의식에 참여함을 통해 결국에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도 상실한 채 무신론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교황파의 불경건에 가담함으로써 주 하나님만을 경배하라는 첫 계명을 위반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화렐은 그들의 위선적 신앙을 방관하지 말고 엄격히 경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프랑스 종교개혁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카피토는 무엇을 말하였을까? 아마도 카피토는 프랑스의 상황을 보고 받고 화렐과는 다른 입장에 서게 된 듯하다. 플래카드 사건 이후 가혹한 박해가 자행되던 프랑스 내의 주저하는 개혁파들에게 로마 교회의 불경건한 미신과 종교개혁 신앙 사이에서 양자 택일하라는 칼빈의 강경한 입장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니, 즉 카피토는 칼빈의 요구는 그나마 내면적으로 종교개혁을 신봉하면서 박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자들을 교황의 교회로 다시 들어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일 사태가 그렇게 된다면 결국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마는 격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카피토의 생각으로는 칼빈은 주저하는 개혁파들에게 무조건 고백과 무모한 순교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현재의 정세를 관망하면서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는 그의 주장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카피토의 이런 온건한 입장은 이미 알려져 있다.
반면에 칼빈은 에스겔의 상황을 자신과 비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전반적인 표현과 특히 그의 결론은 에스겔서의 어법을 따르고 있다. 저들이 듣거나 말거나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책임이 예언자에게는 있고 후에 가서야 사람들은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칼빈은 에스겔이 받은 신탁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운다. 너는 나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을 듣고 나 대신 그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3,17) 가 곧 자신에게 내린 하나님의 신탁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에 이미 기독교 강요 초판 (1536) 에서 보았던 바 칼빈의 예언자적 사명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바울이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이다"(고전 9,16)고 말한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회피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본다. 그것은 아마도 1536년 여름 화렐이 제네바를 잠시 거쳐 가려던 저자를 붙든 후부터 생긴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 의식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제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칼빈의 말에 대해서 좋다고 말하지만 실행할 생각을 않고 자기 좋을 대로 한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앞과 인간들을 증인으로 세워 엄숙히 선언한다: "내가 여기서 약간의 말로써 모든 신실한 인간들을 증인으로 하여 저 하나님의 두려운 이름을 통해". 그것은 에스겔과 같이 자신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책임을 완수하였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과거 에스겔 시대에 사람들이 예언자의 말을 마치 시인의 노래로 들었다가 큰 화를 당하였듯이 오늘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경솔하게 받아들일 경우 큰 화를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칼빈은 말한다. 사람들은 시인의 노래나 웅변가의 연설을 환호와 갈채로써 응답하는 외에 그 말을 그대로 실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칼빈의 말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판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제부터 하는 말은 과거 에스겔의 경우처럼 인간의 말이 아니라 "생명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면 생명의 교훈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이 생명의 교훈을 실천하지 않고 단순히 말로만 좋다고 하는 것은 참 하나님 백성의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칼빈은 자기의 말을 하나님의 신탁으로 보며 자신을 구약 예언자 이래 새로이 나타난 예언자로 이해하는가?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그가 기독교 강요 초판 서문에서 종교개혁자들을 엘리야, 미가야, 예레미야 등과 비교하였다면 그가 자신도 개혁자들 가운데 포함시켜 자신을 당대의 예언자로 이해 않을 이유는 없다. 만일 구약 예언자들과 종교개혁자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가 하나님의 신탁을 받아 전하였다면 후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충실하게 해석하여 전달한다는 것이다.
한편 칼빈이 여기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복종과 실천 없는 믿음의 무익함을 강조한다면 이것은 루터와의 편차를 드러낸다. 이미 종교개혁 제2세대인 칼빈에게는 믿음 그 자체보다 믿음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욱 문제였다: 하나님 말씀은 복음이요 동시에 율법이며 믿는 자에게는 신앙에 의한 칭의뿐 아니라 행위를 통한 성화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신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행함으로써 드러내어 고백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다.
칼빈이 보기에 자기 시대는 바로 에스겔의 시대와 같이 "불행한 세대"이다: 에스겔 시대에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를 당했듯이 그의 시대인들도 바로 루터가 비유한 바 교황청에 의한 포로 생활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불행한 처지에서 해방되기 위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한다.
서문의 위협적 언사 뒤에는 칼빈 자신의 출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즉 칼빈은 자신의 글에 대한 사람들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제부터 자기가 요구하는 것이 단순히 흘려 듣고 말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저자는 이 서신을 널리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
II. 본문 해설
제1부:변증적인 부분
(1) 서론:칼빈 친구의 개인 상황에 대한 동정
이미 서두에서부터 칼빈의 종교개혁의 프로그램이 나타난다: 칼빈은 교황파의 종교를 "에집트"라고 부름으로써 두 진영의 경계선이 명확해졌고 이제는 더 이상 되돌아 갈 수 없는 선이 새겼다고 본다: "당신은 아직도 수많은 우상과 우상 숭배의 가증스러운 일이 당신에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저 에집트에서 나올 수가 없다." 왜 칼빈은 여기서 출애굽 사건을 연상하였을까? 물론 히브리인들의 출애굽은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에집트 종교로부터의 해방은 아니다. 그러므로 칼빈의 비유가 적절하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칼빈의 관심은 탈출, 해방에 있다. 교회의 내부로부터의 평화적 개혁은 더 이상 기대될 수 없다고 보여진 이상 우상 숭배가 판치는 낡은 종교를 벗어나서 새로운 땅으로 가는 일만이 유일한 희망이 아닌가? 칼빈에게 있어서 종교 개혁이란 새로운 출애굽 사건이어야 한다. 출애굽 사건은 단순히 믿는 자들의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교황의 종교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히브리인들이 미련 없이 삶의 터전이었던 에집트를 떠났듯이 옛 종교에서 개혁의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옛 종교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옛날 하나님 백성이 에집트를 버리고 새로운 땅으로 갔듯이 오늘의 하나님 백성도 로마를 버리고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떠나온 에집트를 그리워하는 히브리인들과 같은 미지근한 태도는 용납될 수 없다. 이로써 칼빈의 종교 개혁 프로그램이 드러난다: 로마와 철저한 결별 선언! 새 술은 새 부대에! 칼빈은 진정한 개혁은 분열의 고통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고 인식하였다.
칼빈이 로마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곳에서는 성직자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참 종교가 아니라 그것의 戱畵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은 불경건하고 평신도들은 미신을 쫓는다. "불경건"(impietas)은 자기 의무를 망각함을 의미한다. 성직자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의 의무를 망각할 때 불경건하다. 이런 성직자들이 백성을 하나님에게로 올바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제멋대로 신에 대해 상상하며 미신에 떨어진다.
로마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불경건의 절정은 미사이다. 이런 불경건이 진지하게 행해지는 곳에서 신성 모독이 자행된다. 이런 희망 없는 상황에서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물을 기름과 섞으려는 것과 같은 불가능한 희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칼빈에게 반문할 것이다: 주의 몸된 교회와 분열하기보다는 병든 현실을 치유하고 개혁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어쨌든 로마 교회는 사도들의 전통을 계승한 교회가 아닌가? 그 교회가 아무리 부패했을지라도 그 교회를 떠난다면 사도 전통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적대하는 것이 아닌가?
칼빈은 여기서 우상 금지 계명을 지시한다. 카톨릭 교회는 미사를 비롯한 온갖 신성모독적인 미신을 통하여 제 2 계명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떨어졌다. 1534년 10월의 미사 반박문이 지적한 대로 카톨릭 미사는 우상 숭배, 신성 모독이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맛본 많은 이들이 미사 문제에 있어서 그 말씀 대로 살지 못하고 그 말씀을 멸시하고 소홀히 한다.
카톨릭 신자를 위장하고 미사에 참여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편리한 것을, 하나님과의 화해보다는 인간과의 조화를 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칼빈은 단순히 미사가 우상 숭배라는 것을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자명한 사실이다. 칼빈은 위선의 가능성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이것을 칼빈의 적들은 변호한다. 칼빈은 여기에서 과연 누구를 생각하였을까?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 내의 어떤 이들이 삶의 안락을 위하여 넓은 길을 선택하였다는 것 뿐, 그 이상의 사실은 알 수가 없다
위선자들은 외적 행위와 내면적 신앙의 불일치는 약한 형제를 위한 일이며 내면적으로 불경건에 동의하지 않는 한 그것은 무해하다고 주장하며 또 양심의 자유에 따라 행동한다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며 아무 유익도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칼빈이 보기에는 미사는 우상 제물을 먹는 일과 같이 무해한 일(adiaphora)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일은 연약한 형제를 실족케 하는 악행이다 (마태 18,6-7). 또한 이 행위는 하나님 계명보다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인간의 지시에 더 복종하는 중대한 계명 위반이며 1534년도 플래카드 사건의 희생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만일 마음의 신앙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베드로가 예수를 3번 부인한 후 왜 탄식하였는가?
그런데 칼빈이 여기에 옮겨 놓은 위선자들의 변명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 내용이 과연 긴즈부르그가 주장하는 바 소위 브룬펠스의 위선의 이론을 지시하는가? 내용을 분석한다면 첫째로 신앙의 내면성이 강조된다. 둘째로 순박한 인간들의 무지(imperitorum hominum ignorantia) 때문에 양보의 필요성을 지시한다. 자유로운 행동으로 순박한 인간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 셋째로 위험에 대해 언급한다. 이것은 아마도 신변의 위험, 혹은 박해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상의 내용을 브룬펠스와 비교하자면 브룬펠스는 신은 인간의 마음을 보기 때문에 [무지한 자가 아니라] 불신자나 고집스러운 자 앞에서 위선이 허용된다고 말하였다. 반면 칼빈의 위선자들은 오히려 고린도전서 8-10장의 논리를 원용하고 있다. 종교적 위선을 위하여 바울을 인용하는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관행이다. 긴즈부르그는 위선의 이론은 종교적 박해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농민 전쟁의 비극의 결론이라고 말한다. 반면 칼빈의 위선자들은 신변의 위험, 개인의 이해를 말한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칼빈의 위선자들이 브룬펠스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가 없다. 어쨌든 칼빈이 여기서 위선자들이 바울을 자신들의 후견인으로 간주한다는 정보를 쯔빙글리 혹은 불링거를 통해서 얻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칼빈은 위선이 왜 불가한가를 입증하고자 하다: 위선자들의 이런 변명은 파멸로의 첫 걸음일 뿐이다. 그들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일단 그릇된 방향으로 향한 그들의 실존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칼빈은 예수의 말씀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를 인용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순교자의 신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고백의 신학은 순교자의 신학과 일맥상통한다. 16세기 프랑스 종교 상황에서 솔직한 신앙 고백은 곧 고난을 뜻한다. 칼빈이 주장하는 바 "고백이 없는 기독교, 그러므로 고난이 없는 기독교는 환영"이라는 구호는 이미 여기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또 하나의 신학적 흐름을 지적하자면 그것은 바로 아우구스티니즘이다. 즉 칼빈은 첫 아담이 자유 의지에 의해서 그릇된 선택을 함으로써 실존의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갔다는 아우구스틴의 가르침을 따라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어떠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지 서술한다.
파멸의 둘째 단계는 위선자들이 종교개혁에 대한 교황파의 비판에 외적 행동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칼빈은 사람들이 종교개혁 운동을 비판하는 자리에 동석한 경우에 그 비판을 반박하지 못하는 비겁한 태도를 의미한다.
파멸의 셋째 단계는 그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위선에 은폐(dissimulation)와 가장(simulation)의 두 가지 행태가 있다면 이상의 3단계는 소극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지 않는 은폐에 해당된다.
파멸의 마지막 단계는 자신의 신앙에 반하는 행동을 공공연히 행한다. 결국 사람들은 은폐 단계를 지나서 적극적으로 진실한 카톨릭 교도를 가장한다.
결국 위선적 인간은 방향 설정을 잘못한 결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입증된다. 칼빈은 여기서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우리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예언자가 말했듯이 우리 주와 함께 걸을 것이다." 여기서 칼빈이 말한 바 "주와 함께 걷는 일"은 "방자한 행동"에 의해 주가 우리에게 준 법, 속박을 벗어 버리지 않는 일이다. 반면 미가 6,8에 의하면 주와 함께 행하는 것은 곧 "공의를 실천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칼빈이 이처럼 성서 본문의 맥락을 무시하고 필요한 구절만을 인용한 데서 우리는 칼빈이 얼마나 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말한다: 방자한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바로 神의 법이다―비록 우리 영혼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므로 우리 육신을 神의 법에 굴복시킬 필요가 있다. 율법에서 해방된 인간은 율법에서 자기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 복음의 자유를 오해한 인간들은 자신들이 율법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유를 육신적 방종과 혼동한다.
그 다음으로 칼빈은 위선을 행하는 자들의 행태를 좀더 면밀히 분석을 한다: 많은 인간들이 박해의 공포 속에 神의 법, 즉 제 2 계명을 위배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신의 진노를 일으키지 않고서도 인간의 호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도를 구한다. 이들에게도 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칼빈의 생각으로는 신에 대한 올바른 경배는 교황파의 종교와 양립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爭點이 확연해진다: 神의 계명을 전적으로 철저히 준수하라. 神이 선포한 계명은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리 생명의 위험이 닥칠지라도 神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면서 계명을 준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대신 육신의 안전을 선택했다.
여기서 칼빈은 그리스도인을 "파수꾼"에 비유한다. 파수꾼은 위험이 닥칠 때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할 의무가 있다. 만일 파수꾼이 위험에 직면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대신에 도주하여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가 경고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화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저들은 우상 숭배의 악을 보고도 그것에 대해 경고하기는 커녕 자기 생명을 구하기 위해 침묵과 위선을 행한다. 직무 이탈자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는 인간의 위협에 비할 바 아니다. 여기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칼빈은 에스겔 33,1-9의 경고를 생각하고 있다.
(2) 장황한 서론에 대한 해명
칼빈의 집필 목적은 앞에서 이미 말한 대로 친구의 문의에 대해서 답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칼빈은 친구의 요청과 관련해서 오늘의 프랑스의 심각한 신앙의 위기를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에 이처럼 서론이 길어졌다고 설명한다.
첫째 서신이 본래 개인적인 친분 관계와 오랜 우정에 호소하며 쓰여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칼빈은 이 서신을 출판하게 되었을 때 서신 전체를 손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신이 출판되기 전에 프랑스의 친구에게 보내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현재의 첫째 서신은 私的 서신의 범위를 넘어서 일종의 공개 서신의 성격을 가진다.
"나는 당신의 특별한 요청을 만족시키려 하지만 주제가 일반적인 것이고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으로 또 위험스럽게도 오류에 빠져 있으므로 만일 내가 이 글로써 동시에 같은 오류에 빠져 있는 여러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래서 내 서신을 읽을 모든 이들이 (나는 이 일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것을 열렬히 바란다) 그들 자신을 위해서 쓰여졌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내 일이 헛되지 않으며 열매가 없지 않다고 믿는다."
(3) 고백의 의무에 대해서
칼빈은 다시 프랑스의 위선의 문제로 되돌아 가서 그 악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앞에서 칼빈이 강조한 것이 일반적으로 신의 법에 대한 복종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 길을 제시한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그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학교" 표상은 칼빈의 초기 작품에서 이미 종종 등장한다. 칼빈은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누구나가 철저한 聖化 훈련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주와 닮아가야 한다는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학교"는 당시 상황에 맞추어서 특별히 종교개혁의 운동 내지 신앙을 의미하는 듯하다. 성화 훈련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들 앞에서 주를 고백하는 일이다. 칼빈의 견해로는 성화의 훈련, 그 중에서도 특히 주를 고백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평생토록 부과된 의무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적 신앙과 외적 행동의 불일치가 가능한가? 칼빈의 답변은 절대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교활한 은폐에 의해서 여기서 스스로에 만족하거나 혹은 그가 외적 증언으로써 완전히 뒤집어 놓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 속에 경건을 지니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경건에 대한 그릇된 견해로써 자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참된 경건은 참된 고백을 낳는다."
(4) 교황파 종교가 지배하는 장소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칼빈의 충고
이제까지 원칙적인 고백의 의무에 대해서 논하였다. 그러나 어느 경우, 어느 상황에도 고백의 의무는 필수적인가? 불경건과 미신이 판치는 곳에 사는 그리스도들이 어느 자리에서나 불경건과 미신을 비판하며 복음의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가? 칼빈은 상기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한 발 양보한다. 그는 누구나 그런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신에 의해 선포를 위탁받은 자들, 사도나 예언자들의 임무라고 말한다. 평신도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합당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격에 맞지도 않는다. 그가 볼 때 평신도가 사도나 예언자의 일을 하는 것은 월권 행위이며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루터가 1520년 "독일 귀족에게 보낸 서한"에서 주장한 바 만인 사제설은 칼빈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칼빈은 각자 자신의 소명과 신분에 맞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필 것을 충고한다. 말씀 선포하는 자는 복음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사적 삶에서 각자의 임무에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칼빈의 논리에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 아닌가? 앞에서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고백의 의무에서 면제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반면에 그는 이제 와서 갑자기 말씀 선포자와 평신도를 구별하면서 후자는 마치 고백의 의무가 없는 듯 말한다.
그러나 이하의 글을 자세히 보면 칼빈의 말은 그렇게 곡해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주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고백을 요구한다는 것은 대원칙이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진실한 경건을 부여받은 자들은 (그에게 전적으로 헌신해야 함이 합당한) 그의 거룩한 주권을 모든 합당한 수단으로써 드러내는 것보다 더 확실한 법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 주권을 드러냄에 있어서 자신이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한 모든 기회를 추구하고 모든 순간을 계속하여 포착하는 외에 다른 한계나 목표를 정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규명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첫째 문제는 主는 사악한 자들 사이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고백을 원하는가이다. 둘째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섞여 살고 있는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하려면 어떠한 삶의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이다.
칼빈은 첫째 문제를 다시 두 단계로 나누어 고찰하려고 한다: 첫째 단계로서 칼빈은 성서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지시하고 있느냐를 보고자 한다; 둘째 단계로서 칼빈은 성서의 교훈을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고 성서의 상황이 현재의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지 보고자 한다.
여기서 모든 것을 성서에서 출발하여 비교 고찰하려는 태도에서 칼빈의 종교개혁자적 태도가 잘 드러난다. 그런데 그가 여기서 둘째 문제를 취급해야 하는 이유는 당시대의 해석학적 논란 때문이다. 즉 당시 열광주의자들은 문자와 영을 대비시키면서 바울이 말한 바 "문자는 죽게 만드나 영은 살게 만든다"(고후 3,6)는 말에 근거하여 영을 "죽은 그리고 죽이는 문자"의 교사라고 주장하였다. 열광주의자들은 바울의 말을 알레고리적 해석의 권고로 이해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칼빈은 영의 과제는 새로운 계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이미 들어 있는 복음의 진리를 우리 영에 확실하게 새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의 가르침이 성서에 담겨 있는 것과 다를 경우 그 영은 신의 영이 아니다. 신의 영은 오히려 성서 안에서 우리에게 인식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영은 성서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고후 3,6은 성서 해석학과는 무관하며 하나님 말씀의 효력에 관한 말이라고 이해했다. 따라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알레고리적 해석 방법을 비판하고 성서를 가능한한 문자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성서를 문자적으로 이해한다고 할 때 성서가 보고하는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정당한가? 여기에 대해 칼빈은 말한다:
"물론 나는 왜 우리가 신의 영원한 계명들을 일정한 시대에 한정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무지한 자들에게 이런 절차를 양보한다. 이것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의 계명의 영원성과 사건의 시간성의 대비를 주의해야 한다. 역사 사건은 일시적인 것이나 그 사건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시간에 구속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열광주의자들이 그랬듯이 신의 계명을 죽은 문자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게는 성서는 그 문자적 형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성불가침이며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다. 그러므로 열광주의자들이 그랬듯이 신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부인하거나 뒤바꿀 수 없다. 따라서 옛날에 발설된 神의 명령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영속적으로 효력을 지닌다.
(4.1.1) 구약 성서의 예
칼빈은 먼저 제2계명:우상 숭배 금지령 (출 20,4-6)을 언급한다:
"주가 그의 법에 의하여 우상을 경배하거나 예배하는 것을 금지하였을 때 그는 이 명목하에 불경건한 자들이 우상에게 바치는 모든 외적 예배를 포함한다."
이 계명으로써 금지되는 것은 신체적 거동을 통한 경배의 표현이다. 왕상 19,18의 인용을 통하여 칼빈이 역설하는 것은 외적 행동이다. 구약 성서는 마음의 신앙과 외적 행동의 불일치를 절대적으로 정죄한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간들이 우상을 神이라고 착각하고 우상에게 경배 드렸기 때문이다. 우상이 이제 그들에게는 神이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제 2계명을 어기고 우상 숭배하는 자들은 神을 모독하고 神을 망각했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졌을지라도 제 2계명을 어기는 자들의 행동이 바로 위선에 해당된다고 본다.
한편 인간이 우상 앞에 경배를 표시하지 않음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칼빈은 이사야 52,11 및 고린도 후서 6,14 이하에 의존하여 모든 하나님 경배와 하나님의 경배와는 무관한, 합당하지 않은 의식을 절충하는 일도 우상 숭배에 해당된다고 본다. 이를 위하여 칼빈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족장의 예를 든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족장들이 그들이 거주하던 지방의 우상 숭배를 목격하고도 왜 침묵하였을까, 그들의 행위는 일종의 위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칼빈은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들을 예언자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칼빈이 다니엘의 예를 든 것도 그를 성서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말씀 선포의 책임을 진 예언자로 취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특기할 만하다. 왜냐하면 표준 라틴어역 성서(Vulgata)는 다니엘서를 예언서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반면 히브리어 성서는 에스더와 에스라 사이에 편집함으로써 다니엘서를 예언서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아마도 칼빈도 당시 극소수의 인문주의자들 사이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히브리어 성서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된 듯하다.
어쨌든 칼빈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약의 족장이나 다니엘과 같은 인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불경건한 자들 사이에 끼여 살면서도 우상 숭배로부터 멀리함으로써 자신과 하나님 신앙을 오염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칼빈에 따르자면 제 2 계명은 우상 숭배 금지만이 아니라 하나님 경배와 우상 숭배를 절충시키는 이중적인 신앙 태도도 부인된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되어야 한다.
(4.1.2) 신약 성서의 예
바울이 창녀와의 성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 경고하면서 한 말(고린도 전서 6,12 이하)을 칼빈은 인용한다: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면 그 지체를 우상 숭배 혹은 더러운 미신에 의해서 더럽힐 수 있을까?"
칼빈은 고린도의 열광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문제점은 바로 우리의 [몸]이 행하는 일이 우리 영혼과는 무관하다는 이원론적 사고 방식이라고 본다. 반면에 성서적 사고에 따르면 인간의 몸도 영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인간은 몸 없이는 온전한 인간을 이룰 수 없다. 몸과 영혼을 갖춘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그리스도인은 주의 소유이며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인 이상 몸의 행동과 마음의 신앙 사이에 불일치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몸과 영혼을 분리시켜서 우리 몸이 우상 숭배에 참여한다면 이미 그 마음의 신앙도 온전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는 행동은 간음 행위와 같아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만들며 다른 한편으로 이웃 인간들에게는 걸림돌이 된다.
바울의 말(고전 10,18-21)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성만찬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 됨을 확신하는 것 같이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우상과 친교를 맺는다. 따라서 우상 숭배자들은 그것을 부인할지라도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주를 배신하고 불명예스럽게 만든다.
칼빈은 성례전들을 인간을 주와 결합시키는 끈처럼 이해한다. 그러므로 일부 열광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성례전이 하찮은 것, 참여하든지 않든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그런 것(adiaphora)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순한 의식"에 참여하는 자는 그 의식을 통하여 우상과 결합하게 된다.
고린도의 열광주의자들의 다음 문제는 자신들이 모든 하찮은 것에서부터 자유롭다고 믿기 때문에 우상에게 받친 고기를 먹는 일이 신앙에 아무런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믿었다. (고전 10,23 이하) 이 본문에서 바울이 직면한 문제는 이교도와의 식사라는 미묘한 상황이다. 그것은 단순한 친교의 식사가 아니라 고백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세상 사람과의 접촉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믿는 자들을 그릇된 신앙에로 유혹할 수 있는 어떠한 친교도 피하라는 것이 바울의 충고다. 여기서 칼빈의 바울 해석의 역점은 사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교도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요구했는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였다. 칼빈의 결론은 이교도와의 친교를 용인하되 그들의 불순한 의식은 멀리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 10,23 이하 내용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인간의 자유를 이웃의 약한 형제를 위하여 제한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유가 형제를 시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의 열광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문제는 우상에 바쳐진 식사에 참여함을 통하여 마치 우상 숭배에 가담한 것처럼 보여진다는 데 있다. 이것은 약한 형제를 무시하는 오만이며 무지한 자들에게는 권위가 되어 무지한 자들을 그릇된 신앙으로 인도한다. 결국 그 형제의 오류는 한 인간의 신중하지 못함의 결과이다.
(4.1.3) 중간 결론
칼빈이 앞서 제기한 첫째 문제는 주가 우리에게 어떠한 고백을 원하는가 였다. 그리고 칼빈은 구약과 신약에서 그 교훈을 얻었다.
앞의 성서 내용을 돌이켜 보건대 구약의 족장들처럼 우상 숭배의 오염을 피할 것이며 제 2 계명의 지시대로 하나님 경배와 우상 숭배를 절충하는 태도는 용납될 수 없다. 바울이 가르친 대로 몸의 행위와 마음의 신앙을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사고는 허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교도의 의식에 참석하는 순간 그 신앙도 온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이교도 의식을 멀리 하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리켜 칼빈은 그리스도人들의 私的 고백이라고 본다. 그는 사적 고백을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는 신앙의 진리에 합당하지 않은, 혹은 우리 종교의 완전성과 일치하지 않는 어떤 것도 말하거나 행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칼빈의 이 소극적인 정의에서 카톨릭 교도를 위장하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추측한다. 칼빈이 요한복음 12,42-43을 실례로 든 이유는 복음 기자가 서술한 상황이 프랑스 정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본 때문인 듯하다. 사람들은 박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신앙과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자기 신앙에 위배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4.2) 이제는 성서의 교훈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이 남았다. 성서는 다른 종류의 우상 숭배처럼 교황파 의식을 정죄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물론 구약 시대는 물론이요 신약 시대의 상황을 현실에 비교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칼빈이 볼 때 교황파의 의식들은 이방인의 어떤 미신보다도 더 불경건하고 모독적인 것이다. 그러나 교황파 의식이라고 해서 모두가 우상숭배로 볼 수는 없다. 교황파 의식들 가운데는 당분간 관용할 수 있는 의식도 있다. 이것은 인간의 구원과는 무관한 의식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차 과제는 교황파 의식 가운데서 하나님의 계명에 배치되는 의식과 그렇지 않은 의식을 구별하는 일이다.
(4.2.1)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는 않으나 신중을 기해야 할 관습들로서 칼빈은 특정한 날에 육식 금지령을 어기는 것과 성직자의 독신 의무 파기를 본보기로 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먼저 기억할 것은 자신의 자유 보다는 약한 이웃 형제의 양심을 고려하는 일이다. 바울의 가르침(고전 8장)은 칼빈으로 하여금 신중론을 펴게 했다.
한편 혼인 금지 규정에 있어서도 칼빈은 바울의 가르침(고린도 전서 7장)을 따르고 있다. 혼인을 하든지 않든지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따라서 혼인을 종교의 이름으로 금지하는 것은 복음의 자유에 위배된다. 그리스도인은 사도 바울처럼 특별히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경우라면 모를까 교황파의 악법에 복종할 의무는 없다. 특별히 칼빈이 이 문제를 거론한 이유는 아마도 루터와 쯔빙글리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 운동의 일환으로서 혼인을 한 때문인 듯하다.
칼빈은 이상과 같은 관습은 구원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당분간 교황파가 지배하는 곳에서 사는 동안에는 신중하게 그것들을 준수할 것을 충고한다. 이 충고는 이해할 만하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聖금요일에 버터를 먹었다는 혐의로, 독일에서는 사제가 혼인한 이유로 재판을 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4.2.2)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피해야 할 로마 교회의 행사들로서 a) 형상, b) 도유 성사, c) 면죄부 매매, d) 마귀 퇴치 때 살수 행위 등이 있다. 그는 왜 이것들이 신의 말씀에 위배되는 행위인지를 간략히 살펴 본다.
a) 칼빈은 로마 교회의 형상 숭배는 분명히 제 2 계명의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경배를 드리면서 형상에게는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경의를 표한다고 변명한다. 이미 말한 대로 영혼과 몸을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사고는 잘못이다. 더구나 하나님에게는 "경배"(cultus)를, 형상에게는 "경의"(honor)를? 이것은 위선자들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배"나 "경의"는 神이나 인간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b) 도유를 카톨릭 교회는 7 성례전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사람들은 기름이 면죄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기름을 바름으로써 성화의 은총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신앙은 아무런 성서적 근거가 없는 미신이기 때문에 성례전에서 도유식을 제외했다. 그런데 위선자들은 몸에 기름을 바르는 동안에도 (기름이 아무것도 아니므로) 양심은 전혀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위선자들에게 잘못은 영혼과 몸을 분리시켜 사고하는 것이다. 칼빈은 우리 영혼처럼 미래의 부활에 참여하고 심판석 앞에 서게 될 몸을 이런 식으로 더럽히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말한다.
c) 루터에 의해 1517년에 비판된 면죄부 매매가 로마 교회의 최악의 미신 중의 하나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면죄부 매매에 참여한다면 그것을 목격하는 자들은 그 사람이 그것으로 면죄를 받고자 한다고 믿을 것이다.
d) 마귀 퇴치 時 물을 뿌림은 물이 가지는 정화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성서적 근거가 없는 미신이다. 누군가 자신을 그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이 의식에 참여한다면 이로써 그는 그것을 믿는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며 다른 형제들을 오도한다.
이상 4가지 로마 교회 의식에 참여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큰 잘못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몸과 영혼을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그릇된 신앙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선자들이 주장하듯이 이들 의식들은 하찮은 것, 당분간 관용해도 좋은 것들과는 다르다.
(4.2.3)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의 최악의 악폐라고 할 수 있는 미사에 대해 논해 보자. 칼빈은 미사의 정체에 대해서 이미 기독교 강요에서 상세히 서술하였으므로 길고 반복된 토론은 생략하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1534년도에 프랑스 국민을 놀라게 했던 플래카드 사건을 통하여서도 미사에 관하여 숙지하고 있다.
로마 교회가 빵을 神 같이 숭배하는 한에서 분명히 성서에서 우상 숭배를 정죄한 모든 말들이 미사에 적용될 수 있다.
우선 주가 우리에게 먹도록 내어준 빵을 숭배한다는 것은 제 2 계명의 위반이다.
"이 우상이 율법의 제2계명이 우리에게 숭배하기를 금지한 것과 다른가? 다르지 않다면 왜 빵의 숭배는 바빌론의 형상 숭배보다는 작은 죄라고 간주해야 하는가?"
칼빈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3 청년의 얘기를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재천명한다: 아무리 잔인한 죽음일지라도 우상 숭배보다는 견딜 만하다.
또한 사도가 우상 숭배에 관하여 말한 것을 상기시켜 보건대 우리가 주의 식탁과 악마의 식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저들이 주가 제정한 성만찬의 제단에서 주의 죽음을 헛되게 하며 빵을 神으로 숭배함을 통하여 주의 식탁이 악마의 식탁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바울이 고린도인의 열광주의자를 향해 한 말은 오늘 로마 교회의 미사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5) 위선자들의 변명과 그것에 대한 반박
위선자들은 다음과 말하다:
"그리스도를 바친다는 신성 모독적 생각이나 빵을 그리스도로 바꾼다는 헛된 생각이나 미사를 불경건하게 만드는 미신적인 견해는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을 통해 무지한 인간들의 불의한 욕구를 만족시켜야만 하는 외적 의식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별로 중요치 않으며 우리로 하여금 미사 대신 주의 거룩한 만찬을 거행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여기서 저들의 중요한 변명은 1) 자신들은 미사를 신성모독적인 오류로서 부인하고 있으며, 2) 그러나 외적 의식은 구원과는 무관한 상징이며, 3) 미사를 드리는 동안에 자신들은 그것을 미사 대신 성만찬을 드리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칼빈은 반박하다:
첫째, 미사에는 성만찬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미사에서 성만찬의 형태는 이미 왜곡되었으므로 성례전이라기보다는 戱畵에 가깝다. 칼빈은 성만찬의 요소를 열거한다: 1) 모든 믿는 자들이 거기 초대되었다는 사실, 2) 빵과 포도주의 상징이 제단 위에 놓여짐, 3) 성만찬에서의 약속이 선포됨, 4)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산 생명의 선물이 설교됨. 그러나 미사에서는 이런 요소 중 하나도 볼 수 없다.
둘째, 미사에서 사제는 주의 몸을 바친다. 그러므로 미사에서 주의 죽음을 알리는 성만찬을 지킨다는 것은 語不成說이다. 저들이 마음으로 성만찬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몸으로 참여하는 제사는 주의 죽음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저들이 마음 속으로 무엇을 믿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제사를 지킨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또 다른 자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사제가 무엇이라고 중얼거리던 간에 상관이 없다. 그들은 미사를 주의 만찬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만들며 그의 죽음을 기념케 만드는 상징으로만 간주한다." 그들은 성만찬에서나 미사에서나 동일한 유익을 얻는다고 자위한다. 이 변명은 앞의 변명과 큰 차이는 없다. 여기서 초점은 미사를 성만찬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반박한다: 미사는 주의 죽음을 기억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각하게 만들며 그 효과를 삭제하고 억제시킨다. 또한 주를 제물로 바치는 미사는 주의 죽음을 부정하는 의식이다. 그러므로 성만찬과 미사가 같은 의식, 혹은 상징이라고 말할 수 없고 미사도 성만찬과 동일한 유익을 준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저들은 미사를 고대의 우상 숭배와는 구별해야 한다고 변명한다: 옛날의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의 미신에 참여하여 거짓 神에게 경배를 드림으로써 그것에 神의 영광을 이전하고 참 신에게서 그 영광을 빼앗아 버렸다. 반면에 오늘의 의식들은 (그것이 비록 미신적일지라도) 신의 이름으로, 신을 경배하기 위해서 거행된다는 것이 옛날과 다른 점이다. 또 미신에서 벗어난 자가 의식에 참여하는 한에는 참 종교에서 아무 것도 훼손하는 것은 없다.
칼빈의 반박 : 그러나 구약 성서에도 이방 신을 경배하지 않았으나 우상 숭배로 정죄된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구리 뱀 숭배(민수기 21,8-9)를 구약성서가 정죄하였다면 (열왕기하 18,4) 성체 숭배 역시 정죄 받아 마땅하다. 또 다른 예로서 아론이 만든 금 송아지를 들 수 있다(출애급기 32,4).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자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은 송아지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자 한 데 있었다: "그들은 육적인 눈으로 그를 보지 못한다면 그가 자기들 곁에 현존한다고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칼빈이 후에 미신의 본질은 신이 요구하는 복종과 경배로서의 종교를 그릇되이 실천함이라고 정의한다면 미신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미 여기서 잘 나타난다. 미신은 구체적으로 일정한 그릇된 경건 행위, 대상을 통하여 나타난다. 육적으로 신을 형상화하고 육적으로 경배하는 우상 숭배는 미신의 절정이다.
또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함 왕의 변명(열왕기상 12,26)은 아론이 만든 금 송아지 숭배자들의 변명과 다르지 않다. 구리 뱀, 금 송아지 숭배가 우상 숭배라면 성체 숭배 역시 우상 숭배, 미신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방 신을 숭배하는 것만이 미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속되게 하는 것도 미신이다. 영적 존재인 신에게 육신적 형상을 입히고 그 형상을 신의 모습으로 생각함은 신을 피조물의 수준으로 비하시킴이며 그의 주권을 모독함이기 때문이다.
(6)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섞여 사는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충고
위에서 보듯이 카톨릭 교회 안에서 신성모독과 미신과 우상 숭배가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친구에게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칼빈에게는 카톨릭 교회는 여전히 아직도 존재하므로 교회로부터의 분리를 원하지도, 또 형상 감상 조차 금지하지도 않는다. 칼빈이 바라는 것은 교회로부터의 공간적 간격 유지가 아니라 신성모독, 미신으로부터의 全人적인 분리이다.
마치 바울이 아테네를 거닐 때 우상이 들끓는 도시에서 오염되지 않았던 것 같이 (행전 17장), 또 바울이 이태리로 가는 배에서도 온갖 우상 숭배로부터 간격 유지를 하였던 것 같이 (행전 28 장) 오늘 프랑스에서 우상숭배자들과 섞여 사는 사람도 그들의 미신으로부터 완전히 간격을 유지함으로써 오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칼빈은 여기에서 다시 한번 이 서신이 공개 서한임을 상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입장이 지나치게 강경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입장을 완화한다. 이것은 첫째 서신이 초고에 대한 수정 없이 출판했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서문에서 말한 그대로 칼빈은 [Psychopannchia]의 경우처럼 [두 서신]을 쓰고 출판하기까지 여러 사람에게 읽혔던 듯하다. 어쩌면 이하의 부분은 수정 작업 시 추가된 듯하다. 왜냐하면 첫째 서신은 친구에 대한 충고로 일단락 되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중간 요약:
칼빈은 먼저 친구의 개인적 상황, 어쩔 수 없이 카톨릭 지역에 머물러야 하는 친구의 입장을 동정하였다. 그가 볼 때 로마 교황이 지배하는 카톨릭 교회는 바빌론 과 같은 곳이며 기독교의 새로운 출애굽이 요청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어떤 사람들은 박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카톨릭 교회의 미사에 참여하며 카톨릭 교도임을 위장한다. 여기에서 칼빈은 그리스도인에게 부과된 고백의 의무에 대해서 먼저 지시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구체적으로 카톨릭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충고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먼저 성서의 교훈을 살펴보고, 성서의 교훈을 현재 상황과 비교하고 적용 가능성을 논한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섞여 사는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다. 이로써 칼빈은 친구의 문의에 대해 어느 정도 답변을 주었다고 믿는다.
제2부:논쟁적인 부분
(7) 또 다른 항변
(7.1) 어떤 이들은 칼빈이 미사 참여 여부에서 종교가 살고 죽는 듯이 너무나 사소한 문제에서 까다롭게 굴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치유해야 할 문제는 칼빈이 말한 그런 것보다는 "인간들의 마음에 진정한 경건이 심어져서 성장하게 만들며 인간의 행동을 훈련시켜 경건의 규칙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국 그의 온 삶이 애정, 유순, 인내 및 다른 성령의 은사들에 잠기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한 것을 미루어 볼 때 성령주의자 (spiritualist)의 한 부류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는 미사와 같은 의식은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1534년의 플래카드 사건에 대해서도 냉소적이었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주의 식탁을 배격하고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을 사소한 오류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만일 이것이 쉽게 용서될 수 있는 경미한 위반이라면 사악한 범죄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중대한 말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들은 칼빈이 바울의 말(고전 10,20 이하)을 그 문맥과는 상관없이 我田引水격으로 원용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바울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에게 그 말을 했으며,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피조물을 먹은 것 뿐이므로 자신들의 양심은 깨끗하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 바울은 그 모임이 이교의 우상의 이름으로 지켜졌으며 따라서 그의 마음의 생각이 어찌 되었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조롱거리가 되고 약한 형제들의 양심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행동을 했다고 답변했다.
칼빈은 바울의 상황과 현대의 상황 사이에 충분한 유비 관계가 있고 따라서 바울이 경고가 현대의 위선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런 행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적들의 조롱거리로 만들며 그들의 모범에 의해 약한 형제의 주저하는 양심으로 하여금 모방하도록 유혹하지 않았는가?"
고린도인들이 우상 숭배에 참여한 일에 대해 변명하듯이 현대의 위선자들도 그들의 행동에 대해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 놓으며 그들 모두가 "참된 경건"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신앙이 약한 형제를 유혹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7.2) 미사 참여 여부는 참 경건의 시금석
그러므로 미사 참여 여부 문제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 교황파들은 참된 경건을 부인함의 증표로서 미사에의 참여를 요구한다. 바울 시대에 그러했듯이 오늘날도 종교개혁에 동조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경건을 가졌는가는 미사 참여 여부에 의해 판가름 지어져야 한다. 미사 숭배자들은 하나님 말씀의 치명적인 원수 혹은 그리스도의 적이다. 미사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의 "가증스러운 종교"(exsecrabilis religio)에 소속함을 알린다.
칼빈의 견해로는 미사 참여는 앞에서 말한 대로 심각한 범죄 행위이다―백보 양보해서 미사 참가 그 자체를 볼 때 그것은 하찮은 일인 듯 보인다. 그러나 바울이 할례를 강요하는 유대인들에 맞서 디도에게는 할례를 거부한 경우에서 보듯이(갈라디아 2,1 이하) 참 경건을 부정하는 표시로서 미사를 강요할 경우에는 그것은 자신과 이웃에게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런 사례를 우리는 마카비 시대의 엘르아잘의 경우에서 본다. (마카비 2서 6,7) 하나님의 법과 이름을 폐지하기 원하는 독재자가 율법 준수를 부인하는 표시로서 돼지 피를 맛보도록 강요하는 사건에서 한 번 돼지 피를 맛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즉 그 일은 일회적인 율법 위반일 뿐 아니라 이로써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의 법 전체를 거부함을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칼빈은 교황파가 우리에게 참 경건을 부인하는 표시로서 미사 참여를 강요한다면 믿는 자는 그것을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본다.
(7.3) 미사 참여를 다만 한 가지 법 위반이라고 말하는 자들에
대해서
혹자는 神의 법들을 구별하며 그 중에서 어느 것은 범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칼빈의 생각으로는 우상 숭배는 단순히 제 2 계명만의 위반이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의 利害가 하나님 경배보다 앞서서 어느 법이라도 犯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칼빈이 문제시하는 것은 저 사람들의 마음 자세이다.
"인간의 판단에서 그릇된 것은 신의 뜻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견해에 따라서 명령된 것이 어떠한가가 결정되는 것이며, 신이 율법 수여자임을 보지 않고 (그것이 제일 중요한데) 계명 자체를 보는 것이다. 신의 주권은 그들이 사소한 위반이라고 부르는 범법 행위에 의해서 축소된다."
여기서 칼빈은 아우구스틴의 罪 이해를 수용한다. 죄가 이런, 저런 계명의 위반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소외를 의미한다고 볼 때는 어떤 한 계명의 위반은 한 계명을 위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멸시하게 되고 율법 수여자인 하나님을 멸시하게 됨을 의미한다.
(7.4) 미사는 전적으로 혐오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하여
플래카드 사건을 일으켜서 마치 미사를 증오하는 것만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어떤 사람들은 미사를 증오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것은 재판관이 간통죄는 간과하면서 도둑질과 살인을 엄격히 처벌하는 데 대하여 도둑질과 살인죄를 처벌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물론 플래카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의 경솔한 행동을 징계함은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사의 문제성을 비판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미사의 문제를 인정하면서 그들에게 미사 외에도 다른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훈계해야 한다.
(8) 다른 변명들
(8.1) 나아만의 예
어떤 이들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시리아 왕과 함께 림몬 신전에 가서 경배 드리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한 데(열왕기 하 5,18) 대해서 엘리사가 허락한 것을 원용하여 나아만에게 이방 신전에서 경배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하나님에게 바쳐진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변명한다.
칼빈은 우선 사람들이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원용하여 자신들의 태도를 보편화시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더구나 그들의 행위는 나아만의 태도와 전혀 닮은 점이 없다. 즉 칼빈은 나아만에게는 어떤 위선의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림몬 신전에서 왕을 수행함을 허락할 것을 요구하기에 앞서서 오직 이스라엘 신에게만 제사를 지낼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나아만은 이 약속으로써 시리아 왕과 백성 앞에서 자기 종교를 알리고 이방 神들을 부인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저 요구를 한 것은 칼빈의 생각으로는 미신을 위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칼빈은 나아만의 말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종류의 경배를 허락할 것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부축하고 잡아주는 왕의 구부리는 동작에 자신이 따르는 것을 허락한 것을 요청한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그러나 우상 숭배를 위장한 것이 아니라 그의 군주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고 복종한 것이었다."
반면에 칼빈의 견해로는 나아만을 원용한 자들은 우상 숭배에 참여하며 미신에 대한 자신의 혐오심을 솔직히 고백하지 못한 면에서 나아만과 전혀 닮은 데가 없다.
이미 밝힌 대로 브룬펠스는 [Pandectae]의 "위선의 가능성" 항목에서 나아만의 경우를 원용하고 있다. 브룬펠스는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우상에게 경배 드리도록 허락한 것을 미신을 위장하도록 허용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칼빈이 여기서 나아만의 말을 새롭게 해석한 것은 특별히 브룬펠스를 반박하기 위함인가?
나아만의 예는 우상 숭배에 참여함이 정당한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고전적인 케이스로 자주 인용되었다. 여기서 잠깐 나아만의 경우에 대한 주석의 역사를 살펴 보자.
중세기에 나아만의 행위가 종교적 위선인가를 놓고 대결한 대표적 인물은 14 세기의 니콜라스 (Nicholaus de Lyra)이다. 혹자는 나아만이 새로이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그에게 림몬 신전에서 경배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이 견해를 배척하였다. 왜냐하면 나아만은 모세 법을 따라야 할 개종자가 아니라 모세 법을 준수함이 없이도 구원을 받은 많은 이교도들처럼 참 하나님을 믿게 된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그 자체로 악한 일을 허락할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우상을 숭배하는 것 뿐 아니라 우상 숭배를 위장하는 것도 죄악이다. 그렇다면 엘리사는 어떻게 그에게 허락할 수 있었는가? 엘리사가 그에게 허락한 것은 우상 숭배가 아니라 다만 신전에 왕을 수행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결코 우상 숭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아만은 이 의무를 신전 안에서나 밖에서나 수행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사라센 군대에 잡힌 그리스도인 소녀가 모하메트에 경배함이 없이 그녀의 여주인을 모슬렘 사원으로 동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나안만에게 허락한 것은 정치적 의무의 실행이었다.
니콜라스의 주석은 나아만의 경우를 위선의 가능성의 귀감으로 볼 수 있는가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여 놓았다. 이 논쟁은 특별히 16 세기의 종교 분열 시대에 들어와서 치열해졌다.
1524년 부겐하겐 (Johannes Bugenhagen)이 열왕기 주석을 출간했다. 그는 엘리사의 답변(열왕기하 5,19)은 우상 숭배의 승인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참 神을 인식했음을 보았다. 분명히 나아만은 위선의 불합당성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안에 심어진 씨앗이 싹틀 것이다. 조만간 나아만은 위선을 포기할 것이다. 부겐하겐은 당시대의 상황을 지시한다: 오늘날 불신자들 사이에 사는 자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많은 법을 처방할 수 없다. 우리는 神의 영감의 신비가 그들 안에서 역사 하도록 그들이 불신앙에서 피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우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불경건한 것과의 접촉을 중단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평안히 가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부겐하겐은 여기서 위선을 정당화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당시 새롭게 등장한 문제, 즉 상업, 연구 등의 이유로 신교 지역에서 구교 지역으로 가는 자들의 종교 문제에 대처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룬펠스는 [Annotationes]에서 부겐하겐을 "doctor peritissimus" (탁월한 박사)라고 불렀다. 브룬펠스는 부겐하겐이 잠정적으로 위선을 용인했다고 이해한 때문일까? 부겐하겐의 말은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었다.
1530년 말 왈도파의 모렐(Georges Morel)과 마쏭(Pierre Masson)은 종교개혁 운동과 체계적 관계를 맺기 위하여 외콜람파디우스(Oecolampad)에게 보내는 서신을 가지고 바젤로 향했다. 이 서신에서 무엇보다 미사와 다른 카톨릭 의식을 피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하며 유일한 출구는 그 의식을 영적으로 해석하면서 참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외콜람파디우스의 답변은 분명하다: 분명히 진리를 고백해야 하며 위선을 행치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 사이에는 타협의 가능성이 없다. 순교의 공포를 이유로 들 수 없다. 신을 경배하기를 포기함은 위선 아래 사는 것을 의미한다. 신은 겁쟁이를 배척한다. 외콜람파디우스의 강경한 답변은 두 사람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들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부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부쳐는 나아만의 예를 들었다. 부쳐는 교황의 성례전을 받는 것은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나아만은 왕과 함께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엘리사에게 그를 위하여 기도하도록 요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만은 오직 神에게만 기도했다. 그의 우상 숭배는 왈도파가 카톨릭 의식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과는 다르다. 부쳐는 언젠가 그들이 순교의 공포 없이 신앙을 솔직히 고백할 것을 인정한다. 그는 그들이 그 때를 기다리며 자신들의 연약함을 정당화하지 않도록 경고하였다. 부쳐도 위선의 실제를, 특히 위선의 이론화를 정죄한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외콜람파디우스의 결론과는 다르다. 공적으로 고백하라는 말도 없다. 오히려 가능한 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숨기지 말라고 권고한다. 자신을 내맡기라는 외콜람파디우스의 입장과 카톨릭 의식에 참여하는 왈도파의 입장 사이에서 부처의 입장은 중립적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의 입장은 부겐하겐, 부쳐의 입장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칼빈의 주석은 나아만의 행동을 정치적 의무로 해석한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니콜라스의 입장에 가깝다. 칼빈은 이로써 나아만의 경우를 종교적 위선을 정당화하는 성서적 근거로 사용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한다.
(8.2) 바룩서의 사례
바룩 6,4-5에 의하면 예언자는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빌론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는 자리에서 바빌론인들을 모방하지 말고 마음 속으로 예배하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해서 칼빈의 적들은 자기들은 현대의 미신적 의식에 참석할 때 마음 속으로는 주께 기도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의 답변 : 바룩서 기자의 유일한 의도는 그의 동포가 바빌론의 미신을 제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고려하여 私的으로 그들의 종교가 그들 마음 속에서 손상되지 않고 유지되도록 함이었다. 어찌 보면 바룩서는 위선을 정당화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바룩서 기자는 내면의 신앙을 유지할 것을 호소함과 동시에 바빌론인의 우상과 우상 숭배에 대해서 비판하고 경고하였다. (6,7 이하) 따라서 저들이 그런 사악한 위선 행위에서 바룩서의 조언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8.3) 바울의 경우
칼빈의 적들은 바울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결 예식을 이행한 사례를 (사도행전 21,26) 들어서 자신들의 보루를 삼고자 한다. 바울의 행위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1522년 3월에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Wartburg) 에서 돌아왔을 때 칼쉬타트 (Andreas Bodenstein von Karlstadt)는 폭력으로써 미사를 저지하려 했다. 분열의 현실에 직면하여 [기독교인의 자유](1520)의 내면적, 개인적 차원에서의 자유 이해는 후퇴한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도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였다. 무엇보다 약한 형제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필수적인 것과 무관한 것(adiaphora)을 구별해야 한다. 무관한 것에 관하여 우리 행동은 사랑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미사는 언젠가 폐지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폭력으로써 폐지해서는 안된다. 이같이 루터는 미사까지도 일시적으로 양보함으로써 약한 형제를 염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그들을 얻을 수 있다. 교황파 의식을 유지한다는 말은 위선을 변명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들을 얻기 위하여 유대 사람이 되었던" 바울의 태도는 위선으로 이해될 수 없다. 원칙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론은 무관한 것에 한하여 약한 형제에게 양보를 허용한다. 이 한계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울이 약한 유대인들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디모데의 할례를 허락하였다. 이와 같이 루터는 약한 형제에게 양보를 강조했다. 이처럼 루터는 종교개혁 초기에 열광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갑작스러운 미사 폐지를 거부했던 것은 바울의 모범을 따른 것이다. 당시 특수한 상황에서 루터의 태도는 납득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말을 곡해하여 바울을 그들의 위선의 방패로 삼으려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539년 유트 (Leo Jud)에 의해서 출판된 쯔빙글리의 [In evangelicam historiam de domino nostro Jesu Christo annotationes]의 집필 연대는 추정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1528년 이후일 것이다. 여기에서 쯔빙글리는 말한다: 사도들은 종종 성전에 갔으나 반면에 다른 경우에는 유대인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 은밀한 곳으로 피했다. 이들은 오늘날 복음을 분명히 고백할 수 없는 곳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일을 했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사적인 처소에서 모이며 거기서 神의 말을 읽고 기도한다. 그 다음에 의심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섞이며 일시적으로 전적으로 불경스럽지는 않는 종교 의식에 참여한다. 이는 용납할 수 있다: 사도들은 새 법이 폐지한 제사를 계속 수행하는 성전에 갔다. 그러나 오늘날 富와 명예와 생명을 상실할 것을 두려워 하여 불경건한 의식에 참여하며 사도들의 예를 들어 자기를 정당화함으로써 교황파 가운데 사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로 구약의 의식들은 교황파가 도입한 의식과 비교될 수 없다. 둘째로 이들이 교황파 의식에 참여하는 목적은 사도들의 그것과는 상이하다. 사도들은 선포를 통해서 유대인들을 얻으려 했다. 반면 이들은 공포 때문에 자기 신앙을 감추며 그것을 감히 고백하지 못했고 악인들 사이에 계속 머물렀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그들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배신했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구한다고 믿으나 실은 불신자들과 함께 멸망한다.
쯔빙글리의 후계자인 불링거는 니코데미즘의 공격을 재개했다. 다시금 위선자들이 그들의 후견인으로 삼고 있는 바울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불링거는 [사도행전 주석](1533)에서 사도행전 21장의 바울의 행동은 사랑을 보여줌에 그 목적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바울은 보다 많은 유대인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구약의 의식에 굴복하였다. 그러나 불링거는 아우구스틴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 잘못을 변명하기 위하여 바울과 야고보의 행동으로 변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칼빈의 반박은 전적으로 쯔빙글리, 불링거의 입장을 따른다: 바울이 여기에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또 거기에는 미신의 흔적도 없다. 따라서 바울이 행한 의식을 미사와 비교할 수는 없다. 사실 나실인에 관한 의식은 다른 모세 법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도래와 함께 사라졌으나 그것이 제정된 목적이 주께 감사하고 감사 제물을 드리기 위함이었고 사도가 유대인을 얻기 위해 잠정적으로 스스로 유대인이 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고전 9,20). 반면에 유대교의 의식과 미사는 그 목적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둘째 저들은 사도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사람을 얻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들의 미사에 참여한다고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저들이 바울의 행위를 자기 정당화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은 잘못이다.
(8.4) 마지막 변명
칼빈의 적들은 미사를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선한 사람들이 많은 반면 하나님 말씀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미사의 문제를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형제들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만일 자신들이 공개적으로 미사를 경멸한다면 선한 인간들로부터 심각한 분노를 야기할 것이다.
칼빈의 답변 : 주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되 오직 그들의 선을 위하여서만, 또 약한 자들에게 적응하도록 하되 오직 그들의 교화를 위해서 하도록 가르쳤다. 반면 이들은 사람들의 진노를 야기할 것만을 두려워 한 나머지 주의 가르침을 망각하였다. 즉 이들은 약한 형제를 위한다는 핑계 하에 미사에 참석하지만 약한 형제의 구원은 염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람의 분노를 막으려는 행동을 통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할 것을 모르고 있다.
(9) 칼빈이 친구에게 주는 마지막 충고
칼빈은 이하의 충고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와 인간을 통하여 선포되는 신탁으로 받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금 칼빈의 예언자적 소명 의식을 확인한다. 그의 충고는 두 가지다.
첫째, 어느 경우에든지 사람들 앞에서 미신에 속한 거동을 보여서는 안된다. 동시에 칼빈은 친구의 안전을 염려하여 친구의 거동 때문에 우상 숭배자들로 하여금 친구가 우상 숭배를 경멸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칼빈은 가급적 우상 숭배자들의 집회를 멀리할 것이며 경건하고 흠 없는 삶을 삶으로써 저들로 하여금 친구가 "하나님의 종"임을 인정하게 하라고 충고한다. 칼빈이 친구에게 부친 "하나님의 종"이라는 칭호가 친구가 성직자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일반적인 칭호라고 보여진다. 만일 친구가 성직자였다면 칼빈이 그에게 우상 숭배 의식을 멀리하라고 충고할 수는 없었다.
둘째, 친구가 타인 앞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이 의식을 행하는 동안에 당신이 경멸감을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친구를 "무신론자"로 간주할 것이다. 또한 가정을 이끄는 인간으로서 가족들이 친구에게 복종하며 종교적으로는 주를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칼빈의 친구는 곧 혼인할 사람이다. 칼빈 자신은 1540년에 가서야 재세례파였던 남편과 사별한 두 아이의 어머니 Idelette de Bure과 혼인하였다. 그러므로 칼빈이 이 글을 쓸 때는 아직 혼인 생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의 혼인관 및 가정관을 볼 수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여 가정은 조그만 왕국과 같다고 하였고, 남편은 가정을 하나님으로 위탁받았으므로 가족들이 하나님의 뜻에 먼저 복종케 만들고 그 다음으로 가장에게 복종하게 만들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가족들의 경건 훈련을 맡은 가장의 책임은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 가장의 첫째 조건은 그의 가정을 "작은 교회"로 만드는 일이다.
말하자면 칼빈은 한 편으로는 가정을 국가의 축소판으로 보았다. 그는 가장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받았으므로 가부장적 권위를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가장은 가정의 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가족으로부터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가장은 자신에 대한 복종을 앞세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에서도 복종을 요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여기에 또한 그가 기독교 강요에서 진술한 정치 윤리를 가정에 그대로 적용함을 보게 된다. 또 한 편으로는 칼빈은 가정을 교회의 축소판으로 보았고 가장은 가정의 목회자와 같은 소명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가족 구성원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의 "동료 종"이다. 여기에 칼빈의 유기체 사상이 엿보인다. 가장이나 가족들은 모두가 가정이라는 유기체의 지체들이다. 각 자체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가장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볼 책임을 맡았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고 경건 훈련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가장의 책임이라고 보았다.
이상의 서술에서 나타난 것은 칼빈의 가장에 대한 견해가 다분히 양면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 한편에는 가부장주의적 입장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기체 사상에 의거하여 전통적인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가부장의 독재와 횡포에 한계선을 긋고 있다. 그러기에 칼빈은 가부장의 권위를 역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부장의 책임과 그의 한계를 지시한다.
칼빈이 여기 이처럼 장황하게 가장의 의무에 대해서 설명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부분은 지금까지의 문맥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듯도 보인다. 그러나 칼빈의 글은 다분히 상황과 연관이 있다. 그의 친구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당시의 관습대로 그는 하인들을 고용할 것이다. 칼빈은 여기서 하인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훈련하도록 특별히 당부하는 이유는 혹시 그의 하인들 중에서 집 주인이 종교개혁에 물든 것을 눈치 채고 종교 재판관에게 주인을 밀고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그 일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하인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를 시도해 보고 그 나머지 일은 하나님에게 맡기라고 충고한다.
또 칼빈은 종교가 다른 여인과 혼인을 할 경우에 닥칠 불행에 대해서 경고한다. 칼빈은 종교가 다른 하인을 고용할 경우에서 생기는 위험보다는 종교가 다른 여인과의 혼인에서 생기는 난관을 "족쇄", "미로"라고 표현한다. 하인을 고용하는 경우와 달라서 혼인은 파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보여진다. 그 족쇄, 미로는 바로 "불신자들과의 함께 멍에를 메는 일을 금지"하는 주의 말씀을 (고린도후서 6,14) 멸시한 것에 대한 대가이다.
(10) 죽음에 대한 명상과 결론
칼빈은 다시금 앞에서 친구에게 충고한 말을 요약하여 권면한다: 친구는 말씀 선포의 직무를 맡지 않은 이상 자신의 신앙을 일부러 공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상 숭배에 가담하면서 베드로 같이 자기 신앙을 부인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친구는 우상 숭배를 통하여 거룩한 종교와 자신의 몸을 오염시켜서는 안된다. 부득이 한 경우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신성모독적인 행위를 회피해야만 한다. 인간으로부터 호의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심판을 초래하는 행위보다는 차라리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편이 더 낫다. 순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영원한 삶의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로써 칼빈은 전형적인 종말론적 명상으로써 글을 맺는다.
"죽는다는 것이 그렇게도 비참한 일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죽음은 영원한 삶, 축복된 안식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결코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 종말이 아니다. 죽음은 다만 지상의 생에서 피안의 생으로의 이행 과정일 뿐이다.
끝으로 칼빈은 자신의 진술이 편안한 가운데서 사변적으로 쓰여진 말이 아니라 종말의 희망 속에 죽은 순교자들의 증언이라고 주장한다. 칼빈의 종말론적 명상은 다만 명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 온다. 종말의 희망은 곧 순교 정신의 각오를 가능케 한다. 종말의 희망을 가지는 자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리를 위하여 용감히 죽음과 대결한다. 이런 결론은 당연한 것이다.
칼빈은 이상으로 적대자들의 위선에 대한 여러 가지 변명들을 반박하였다. 그리고 친구에게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를 충고했다. 그는 친구에게는 종교적 위선 대신에 주를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친구에게 순교 정신을 고취시키는 것 뿐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칼빈의 깊은 신뢰심에서 우러나온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인간은 올바른 선택을 하여야 한다―그러면 하나님이 그 나머지의 일을 선하게 마무리지어 줄 것이다. 이것이 칼빈의 마지막 인용문: 베드로전서 2,9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 왕의 제사장, 거룩한 국민"인 우리는 흔들림 없이 주의 이름을 널리 선포하여야 한다.
III. 결 론
첫째 서신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로마와의 결별 선언이다. 칼빈에게는 교황의 종교는 되돌아 가서는 안될 에집트와 같다. 종교 개혁은 새로운 출애굽을 의미한다. 출애굽이 의미하는 바는 로마로부터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다. 칼빈이 생각할 때 해산의 고통이 없이 새로운 생명이 탄생될 수 없듯이 진정한 종교 개혁은 분열의 고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도적 교회와 분열하는 것은 하나님과 적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볼 때 로마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교회가 아니라 우상 숭배, 미신이 판치는 불경건의 종교일 뿐이다. 사도적 전통은 성례전적으로 계승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 밝힌 대로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은 엘리야, 미가야, 예레미야 등 극소수의 예언자들에 의해서 대표된 적이 많았다. 현재의 교황파 종교는 사도적 전통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종교가 사도적 전통을 실천하지 못하는 한 사도의 후예라고 할 수 없다. 로마 교회에서 발견되는 것은 참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 戱畵化된 종교일 뿐이다.
중세 이래 로마 교회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종교를 지도하는 목자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로마 종교에서 자행되는 모든 불경건을 근본적으로 성서적 토대&